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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엔저 비상 경계심 높여야

중앙일보

입력

우려하던 엔화 약세가 본격화해 달러당 1백30엔선을 넘어섰다. 이미 절하 곡선을 그은 지는 오래로 얼마나 빨리 어느 선까지 떨어지느냐가 관심이었는데 한달 남짓에 5% 이상 떨어졌다. 그만큼 우리에겐 환율 문제가 내년 경제 운영에 최대의 복병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 약화,금융 시스템 불안이 근본적 요인이다. 9.11 테러 사태 이후 미국 경제가 바닥을 벗어나오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 경제는 회복은커녕 갈수록 악화일로다.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도 경기가 도무지 기지개조차 켜지 않는 상황에서 소위 유동성 함정의 늪은 깊어져만갔다. 엔화 약세는 이런 벼랑 끝에서 꺼내든 최후의 카드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엔저(低) 효과가 먹혀들 경우 내년도 경제 성장을 현재의 마이너스 예상에서 제로 성장까지는 막을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물가 하락과 경기 위축이 악순환으로 맞물리는 디플레이션 현상에 제동도 걸며 내리막 경제에 숨통을 틀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일본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다면 세계 경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해 걱정거리를 덜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일본 경제의 심각성을 감안해 엔화 약세를 용인하려는 자세다.

문제는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 주겠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지켜보야야 할 점은 아시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일본이 얼마 전 중국에 위안화의 절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데서 보였듯이 엔화의 가치 하락이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 경쟁으로 번질 경우 최근의 아르헨티나의 경제 파국과 더불어 국제 외환시장에 먹구름을 불러오리라는 것이다. 엔화 가치가 떨어진다고 원화만 제자리에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엔화 약세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화의 나홀로 강세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긴 하다.

그러나 엔저는 '득(得)보다 실(失)'이 큰 악재임은 분명해 우리로선 수출.흑자.성장 둔화의 연쇄적 파장을 우려치 않을 수 없다. 수출 증대로 경제 회복의 돌파구를 여는 데 큰 장애가 되는 셈이다. 이미 업계에선 원화와 엔화 가치가 10대1 이하로 하락하면 수출은 물론이고 외국인 주식 투자 등에까지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는 우려가 쌓이고 있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10% 떨어지면 수출은 27억달러, 수입은 8억달러가 줄어 연간 무역수지 감소폭이 19억달러에 이른다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

불안한 것은 이런 엔저가 내년 상반기까지 가며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달러당 1백40엔 이상의 예측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정부로선 엔저에 대비한 정책 수단이 많지 않다.

그러나 손 놓고 있을 일도 아니어서 우선은 우리 경제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기 어렵겠지만 수급 조절 등 간접적 방안을 동원해 환율 안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기업들도 환리스크 회피와 일본 시장 개척에 더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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