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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과 명탐정 '비독'의 대결

중앙일보

입력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100년간 프랑스는 질풍노도의 세월을 보낸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나폴레옹이 등장했으며 보불전쟁과 파리코뮌이 거쳐갔다.

시절이 하수상하면 민초들은 영웅을 기대하게 마련이고 필요하면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실존인물인 비독(Vidocq:1775∼1875)은 1세기를 사는 동안 대도(大盜)와 명탐정을 오가며 민중의 사랑을 받은 영웅이었다.

50차례가 넘는 투옥과 탈옥 경력을 지닌 그는 돌연 경찰로 변신해 경찰 개혁에 앞장서며 훈장까지 받았다가 훗날 사설 탐정으로 활약한다. 루팡과 셜록 홈즈를 합쳐놓은 인물에게 반하지 않을 민중이 있을까. 28일 개봉될 '비독'의 무대는 1830년 파리. 이곳에는 거울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살인마가 나타나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시민들의 열망을 한몸에 안고 연쇄살인범 추적에 나선 명탐정 비독은 그의 꼬리를 붙잡는데 성공하지만 검술대결에서 불의의 일격을 받아 화염이 치솟는 구덩이로 추락한다.

비독이 죽었다는 소식으로 온 파리시내가 비통함에 잠겨 있는 가운데 그의 전기를 집필하던 젊은 기자 에틴 보아세가 비독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조사한다. 그러나 사건의 실마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관련자들은 하나씩 죽어나간다.

영화 속 배경은 나폴레옹이 물러난 뒤 왕정복고운동을 이끈 샤를 10세가 왕으로 군림하고 있던 시절. 그는 대혁명으로 이미 자유의 바람에 중독된 민중들을 탄압하며 왕권 강화와 귀족 우대 정책을 펼치다가 1830년 7월혁명이 발발하자 단두대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비독과 유리가면의 대결 뒤에는 민중과 귀족들의 막판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전개됐던 것이다. 화면에서 혁명 전야의 긴박한 고요를 감지하기는 어렵지만 비독이 영웅으로 떠올랐던 속사정은 짐작이 간다.

특수효과 전문가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피토프는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를 내세워 관객들의 애국심을 한껏 자극했다. 이 전략은 잘 맞아떨어져 지난 9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로부터 프랑스 영화시장을 지켜내는 데 톡톡하게 기여했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의 미술감독 장 라바세가 꾸며낸 연금술사들의 작업장과 음습한 파리 뒷골목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수미쌍관의 구성도 제법 촘촘하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만큼 비독에 대한 열망이 없을 수밖에 없는 국내 관객들이얼마나 영화에 빠져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지막 의외의 인물로 드러나는 범인의 정체에만 집중할 것. 곁가지들은 오히려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된다. (서울=연합) 이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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