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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페소화 평가절하 되면… 세계경제 주름

중앙일보

입력

"아르헨티나 임시 대통령은 하기 싫은 결정을 해야 한다."

뉴욕 타임스는 23일자 기사에서 이런 제목을 내걸었다. 내년 3월 초 새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정국을 책임진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 대통령이 가까운 장래에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달러화에 1대1로 묶여 있던 페소화 가치도 떨어뜨려야 하는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 결국 디폴트 선언 하나=사아 대통령은 21일 "아르헨티나에 실업자가 없어질 때까지 공공부채(1천3백20억달러)에 대한 채무지불을 유예(모라토리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자 의회 다수당인 페론당 의원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사아는 또 국내외 채권자들에게 보유 중인 채권의 30%인 2백90억달러를 탕감해줄 것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차리 갚을 능력이 없으니 일단 이만큼 빚을 줄여달라는 것이다. 이미 디폴트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런 형국이라 신용등급 추가 하락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일단 미국의 유력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Caa3에서 Ca로 낮췄다.

◇ 어떤 경제정책 쓸 것인가=사아 대통령은 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정 긴축정책 기조는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재정흑자를 기록한 2개주 가운데 하나인 산루이스 주지사로 18년 동안 재직한 인물이다. 사아는 또 "지난 10년간 지켜온 '1페소=1달러 정책(페그제)'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페소화 가치 유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경제관계가 밀접한 브라질 대통령이 아르헨티나 정부에 고정환율제 폐지와 평가절하 단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월가의 경제전문가들도 페소화 가치가 적으면 20%, 많으면 50%까지 떨어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페소화 평가절하는 아르헨티나 수출경쟁력을 그만큼 끌어올릴 것으로 보이나 12년 전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악몽을 재현시킬 가능성도 있다.

동시에 기업과 가계의 대규모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르헨티나 금융기관의 대출은 80%가 달러화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면 채무자들의 원리금 상환부담은 급증하게 돼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페론당 의원들은 평가절하와 함께 국민의 금융기관 채무도 줄여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가절하가 실시될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20~30%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4년간의 경기침체로 국민소득이 이미 14%나 줄어들었다.

권기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국은 아르헨티나와의 거래가 작아 디폴트를 선언해도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위기가 신흥시장(이머징 마켓)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작용할 경우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해외 차입을 어렵게 할 소지도 있다.

정재홍 기자 hong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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