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통신의 또 다른 문제 : 사생활과 보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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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우리 삶에 자양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毒)이 될 것인가. 그 많은 부분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전세계의 무선통신 이용 실태를 연구하고 있는 인류학자 로버트 블린코프는 “무선 혁명을 기술 혁명이 아니라 사회적 혁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케팅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환경이 무선 혁명의 전개 양상을 결정한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흥미롭게도 일본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의 소비자들은 이미 취향에 따라 자기만의 무선통신 스타일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휴대폰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 젊은이들이 휴대폰을 도구가 아닌 동반자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특이한 벨소리, 독특한 이미지로 꾸민 컬러 화면 등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아직까지 무선통신을 주로 업무나 안전을 위해 사용한다.

RIM社의 휴대용 메신저 블랙베리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무선장비 중 하나라는 사실은 많은 미국인이 업무상 무선통신을 이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안전 측면에서는 9·11 테러로 무선통신의 위력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뉴욕에서 사는 작가 마이크 데이지는 테러 당일 뉴욕 금융가의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 그는 휴대용 컴퓨터를 열고 즉시 무선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는 참사를 묘사한 글을 메일링 리스트에 수록된 5천개의 주소로 전송했다.

이제 어디서나 무선통신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무선통신은 점점 더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들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때로 불확실한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인스턴트 메시지를 보자. 컴퓨터상의 인스턴트 메시지도 중독성이 있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단짝 친구끼리, 커플끼리, 그리고 부모·자식끼리 하루 온종일 대화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계속하게 하거나 중단시키는 기본 지침은 무엇이 될까. “항상 접속돼 있고 항상 켜져 있다는 사실은 무선통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팜社의 중역 데이비드 네이글은 말했다. “때로는 가족과도 떨어져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사생활과 보안이다. “통신망을 통해 오고간 개인의 일상에 대한 정보는 기록으로 남는다”고 AT&T 연구소의 폴 헨리는 말했다. “이것을 악용하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이런 세상이 도래하려면 앞서 이뤄져야 할 것들이 많다(현재 첨단기술 분야는 답보상태이지만 무선기술 분야만은 전망이 밝다). 현재로서는 기술간 호환성이 문제다.

이용자 간에도 뚜렷한 차이가 난다. 블랙베리는 시간관리가 철저하며 비싼 사용료를 낼 수 있는 정통 비즈니스맨들이 많이 사용한다. 성능이 개선된 쌍방향 호출기도 스타들 덕분에 인기를 얻고 있다. 모토롤라社는 영화배우 애덤 샌들러와 가수 키드 록 같은 사람들에게 이 호출기를 무료로 제공한다.

휴대폰 제조사들은 제3세대(3G) 표준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휴대폰으로 광대역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NTT도코모社의 3G 헤드셋에는 조그만 비디오 카메라가 달려 있어 화상 대화가 가능하다. 노키아社는 MP3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휴대폰을 생산한다.다른 기계끼리 무선으로 연결하기 위한 기술로 ‘블루투스’(Bluetooth)가 있다.

이것은 거리의 한계가 있으며, 현재는 10m 반경 내에서 연결 가능하다. 전기기타에 블루투스를 적용하면 소리를 무선으로 가장 가까운 앰프에 전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방을 오가면서도 기타 연습을 할 수 있다. 블루투스의 출발은 더뎠지만, 지금은 소니社 같은 기업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니 아메리카社의 하워드 스트링어 최고경영자는 “우리에게 무선은 모든 소니 제품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선기술의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802.11b’라는 기술이다. 광고담당자들은 그 어려운 이름 대신 ‘와이-파이’라는 부르기 쉬운 이름을 만들었다. 애플社가 홈 네트워킹 시스템에 이를 도입한 이후 이 기술은 로컬 네트워크에도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이것은 호텔·공항, 심지어 스타벅스 커피숍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뉴욕·시애틀·샌프란시스코에서는 공공장소에서 ‘802.11b’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社의 윈도 XP도 와이-파이 지원 기능이 있다. 랩톱에 1백달러짜리 ‘802.11b’ 카드를 꽂으면 곧 바로 전파를 탐지해 인터넷에 연결된다. 와이-파이를 이용한 인터넷 라디오·TV, 나아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인터넷 냉장고도 나올 것이다.궁극적으로는 다른 방식 간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혼합 시스템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집이나 커피숍 같은 곳에서는 값싸고 빠른 인터넷 접속을 이용하고, 실외에서는 좀더 비싼 무선전화 형태의 시스템으로 바꿔 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복잡한 문제도 생길 것이다. 현재 3백50만회선으로 추정되는 가정용 컴퓨터 네트워크는 순식간에 몇배로 늘어날 것이다. 현재의 주된 용도는 인터넷 공유다.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갖춘 인텔社 중역 게리 마토스는 “아이들끼리 인터넷을 서로 쓰겠다고 싸우는 일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제 마토스가 걱정하는 것은 자녀가 너무 오래 인터넷에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사용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마다 원하는 것을 내려받을 것이기 때문에 저장공간이 쉽게 동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벽장이나 지하실에 대용량 서버를 설치한다는 구상도 준비돼 있다.

Steven Levy 기자
자료제공 : 뉴스위크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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