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르헨, 포퓰리즘의 끝

중앙일보

입력

아르헨티나 사태가 결국 갈 데까지 가는 것 같다.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초긴축 정책이 촉발한 파업과 약탈 등 사회적 혼란이 급기야 현직 대통령의 사임으로 무정부적 사태와 사실상 외채상환 불능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반발이 이유없는 게 아니다. 극심한 불황 속에 실업률이 18%를 상회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재정지원을 거부해 진퇴양난이다. 여기에 정부가 임금.연금을 삭감하고 민간의 예금인출을 억제하는 것으로 모자라, 내년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참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아르헨티나를 바라보는 눈은 차갑다. 1년 넘게 경제가 표류하고 국가신인도가 추락하는 동안 오늘의 사태를 우려해 아르헨티나와의 경제관계를 감축 내지 단절해 왔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가 설사 국가부도 사태에 빠진다 하더라도 그들이 볼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금번 사태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르헨티나가 지금의 지경에 이른 이유와 과정은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시사하는 바 크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와 관련,연율 5천%에 이르던 인플레이션을 잡느라 1990년대 초 이후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고정환율제와 그에 따른 국제경쟁력 상실이 자주 지적된다.

아르헨티나 문제는 시작도 끝도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에서 비롯됐고, 그 뿌리는 70년대 이래 소위 페론주의로 일컬어지는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부실제거와 체질강화보다는 정부지원을 선택해온 방만한 나라살림과 그에 의한 국가부채 누적이 20년 넘는 아르헨티나 문제의 근원이다.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 네번의 국가부도를 맞았다. 그 때마다 과감한 개혁과 구조조정을 시도했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이어진 정권교체로 국민에 대한 고통분담 요구는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살림은 늘 건실하게 꾸려야 한다는 것, 구조조정을 위해 인기가 없더라도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 아니면 결국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아르헨티나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물론 아르헨티나와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경제안정.국제경쟁력.국가신인도 등 제반여건이 아르헨티나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보일 정도로 우리 사정이 더 나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 사태를 지구 반대편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에게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만 한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해마다 국가부채가 불어나고 있는데, 그 상환부담의 어려움을 새 빚을 얻어 피하려 한다. 위기극복 심리와 내년으로 다가온 선거로, 아직도 나라경제 곳곳에 잠재한 부실을 애써 외면하고 고통분담 요구는커녕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과 씀씀이가 늘어나는 등의 조짐조차 보인다. 아르헨티나 사태는 강건너 불이 아니다.

잘못될 조짐이 보인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싹을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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