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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대가 발견하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초당굴은 초당골 3백 83「미터」의 산밑에 뚫어져 폭 7「미터」높이 8 「미터」의 구멍으로 1초에2백 「톤」의 물을 쏟아내고 있다. 입구로부터 배꼽까지 오는 물 속을 헤치고 30 「미터」들어가면 굴 천장과 물이 닿아 굴은 막히고 만다.
몇 차례 수중 탐험을 시도했으나 실패. 후퇴한 대원은 서쪽 50여「미터」지점의 산중턱에서 수직으로 뚫어진 금당굴에 줄사다리를 내려 맨 위층부터 조사에 착수했다. 측량과 조사를 함께 실시해본 결과 일부 보도된 도면은 방향과 거리 내부 구조가 엉망이었고 중유석과 석순 등은 국내에서 B급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3단계의 끝에 위치한 21개의 「림느톤쿨」(논두렁 모양)은 그 깊이가 1「미터」30「센티」나 되어 한국 최고였다.
그런데 한 층의 면적이 신세계 백화점의 5배 정도가 되고 5단계는 사람의 머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인데 여기에 머리를 들이 밀자 폭포 소리가 울리어 왔다.
이 물소리가 바로 초당굴의 본류인 것으로 추측, 6단계(13미터) 7단계(15미터)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8단계 9단계의 30여 「미터」나 되는 아찔한 절벽을 안고 돌아 「트라패스」폭포에 도달함으로써 초당굴의 본류를 찾았고 초당굴 입구 30 「미터」에 막힌 암석의 두께가 10여 「미터」임도 측량 결과 밝혀졌다.
16시간이나 강행군 한 이 탐험의 1차 성공에서 전 대원은 각각 조금씩 부상을 입었으나 동양 최장의 동굴 본굴을 찾은 기쁨에 아픔을 잊고 서로 어깨를 얼싸 안았다.
관광지로서는 너무 험하여 적당치 않으나 천연 기념물의 지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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