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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이형택 "기싸움 안지려 라켓 부숴

중앙일보

입력

이-"이형택입니다."

형-"형편없는 성적이었지만 한번 봐주십시오."

택-"택도 없는 소리 마라."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보라고 기습적인 질문을 했다. 검게 그을린 이형택(25.삼성증권.사진)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번더 재촉하자 머리를 긁적거리다 답을 내놨다. 텅빈 서울 올림픽공원 센터코트의 을씨년스런 분위기 못지않게 썰렁했다.

그의 답변 속에는 올해 메이저대회 3개,투어대회 18개,챌린저대회 9개 등 30개 대회(데이비스컵 제외)에 출전, 절반 가량을 첫판에서 탈락한데 따른 자책이 묻어 있었다.

지난 11일 일시 귀국한 한국 남자 테니스의 간판 이선수에게 한해 결산과 내년 포부를 물어봤다.

◇ 인기=이선수는 지난 6월 24일(한국시간) 윔블던 테니스대회 직전 런던시내 한국식당에서 할머니팬에게 선물을 받았다. 이선수를 알아본 교포 할머니는 "꼭 이겨라"는 당부와 함께 1백파운드(약 19만원)를 건네고 뒤이어 사인까지 요청했다.

지난해 US오픈에서 16강 진출로 한국남자 선수 사상 첫 1백위권 내 진입에 성공했던 이선수는 올해 한차례 투어대회 준우승과 사상 최고 랭킹인 60위(8월)를 달성했다. 그 덕분에 이선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용품 제공 제의도 줄을 이었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비행기 탈 때 항공사 직원들이 이코노미 좌석을 신청한 그에게 가끔씩 비즈니스 좌석을 제공하기도 했다.

"인기의 비결은 실력이더군요. 여름 이후 자주 1회전에서 떨어지자 팬레터도 뚝 떨어졌어요."

부진에 빠지자 '서비스·리턴에 약점이 많다. 포핸드 스트로크 위주의 공격이 단조롭다'는 질책이 쏟아졌다. 랭킹이 18일 현재 1백16위까지 추락했다. 결국 내년 투어에는 예선부터 뛰어야 할 신세다.

인기는 부침이 많았으나 오히려 상금 등 실속은 챙긴 편이다.올해 벌어들인 상금은 15만8천달러(약2억5백만원)로 지난해보다 5만달러 정도 늘었다.게다가 60위권 진입에 따른 소속팀과의 랭킹 인센티브로 약 2억여원을 따로 챙겨 짭짤한 한해를 보냈다.

◇ 자신감 ="애거시와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관중을 휘어잡는 스타 기질에 주눅 들었지만 투어대회를 본격적으로 맛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선수는 지난 2월 말 미국 사이베이스 오픈에서 앤드리 애거시(31.미국.3위)와 1회전에서 만났다. 당시 애거시는 볼보이와 공을 주고받는 장난으로 세트 스코어 1-1의 팽팽하던 분위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이끌어갔다. 결국 뒷심에 밀린 이선수가 무릎을 꿇었으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랭킹 1백위 내 선수들은 고비 때 집중력이 대단하더군요. 저도 시간벌기.어필 등 상대의 흐름을 뺏는 요령을 터득했습니다. 또한 자신감이 승부의 절반을 결정한다는 교훈도 배웠어요."

이선수도 올해 10개의 라켓을 코트에서 부러뜨렸다. 덩치 큰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긴장감을 털어내는 방법으로 선택한 고육책이다.

◇ 50위 ="앞으로 5년 내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내년은 그 시발점입니다. 결혼도 그 뒤로 미뤘습니다."

내년 목표는 50위권 도전이다. 이선수는 지난 10월부터 명문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 코치 출신 최희준 코치와 결합,기술적인 약점을 교정 중이다. 노출된 공격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공격적인 스타일로 변화도 시도하고 있다.

이선수는 "한해 10개월 정도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외롭다. 팬레터 읽는 것이 큰 힘이 된다"며 e-메일 주소(hyungtaik76@hanmail.net)를 공개했다. 현재 이선수는 홍콩 아시아테니스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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