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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질병|「처칠」에 관한 회고|주치의 「찰즈·모란」 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45년 9월 6일(「이탈리아」의 「코모」호변에서)
「루스벨트」는 『「처칠」은 하루에 백 번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친군데, 그 중 쓸 만한 것은 넷 정도다』라고 말했다는데 그 얘기를 「윈스튼」에게 했더니 「윈스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루스벨트」가 그런 말을 했다면 무례한 짓이다. 생각이란 것을 전혀 가지지 못한 자의 말이군….』
(51년 가을 총선거에서 보수당이 이겨 「처칠」은 다시 수상이 되었다. 이듬해 52년 1월 방미.)
▲52년 1월 1일(「퀸·매리」호상에서, 78세)
『옛날만큼 마음이 침착해지지 않게 되었어. 「찰즈」, 사실을 얘기해주. 나는 차차 능력을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수상은 어쩐지 의기소침했다.
▲53년 6월 25일(6월 24일 「처칠」은 「런던」에서 심장의 발작이 생겼다)
수상의 말은 점점 모호하게 되고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각의에는 얼굴을 내지 않도록 충고하다. 수상이 아무래도 출석하겠다고 버티기 때문에 왼쪽 입가가 쳐저 보기 흉하기 때문에 나은 다음에 사람들 앞에 나설 것을 충고하다.
▲53년 7월 6일(「차트웰」에서)
날씨도 나쁘고 수상의 몸 형편도 좋지 않다.
『나는 죽음이나 질병에 관한 것은 알 수 있으나 이것만은 모르겠어(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전에는 활발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머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텅텅 비었어…』 수상은 한탄했다.
수상은 침대에서 돌연 「롱펠로」의 「시실리의 킹·로버트」라는 시를 읊기 시작했다. 조금도 더듬거리지 않고 읊었다.
『언제부터 아시는 십니까?』
『50년쯤 전부터…』 나는 책장에서 「롱펠로」의 시집을 꺼내어, 한 번 더 수상에게 읊어주기를 청했다. 약 3백50단어나 되는 이 시에서 수상이 틀리게 한 말은 열 마디도 없었다. 심장장해는 일으켜도 기억력은 쇠퇴하지 않았다고 말했더니 수상은 미소지었다.
▲53년 11월 10일(「런던」에서)
수상은 12월 4일 「버뮤다」섬에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기로 했다. 수상은 기분이 대단히 좋은 모양이었다.
『소련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소련측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라고 수상은 말했다. 대단한 낙천주의다.
▲53년 12월 2일(「버뮤다」섬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독서에 몰두하고 있는 수상을 힐끗 쳐다보면서 「이든」 외상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뮌헨」 회담에 임하는 「체임벌린」 수상을 보고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뿐이라고 모두들 말했으나, 이와 같은 친구들이 지금 수상에게 또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나는 외상을 그만두고 내정문제도 다루어 보고 싶은 기분인데, 수상이 승락해주질 않아요.』
이와 같은 「이든」의 말 안에 수상과 「이든」의 본질적인 차이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정세를 냉정히 판단하여 분석하는 능력에서는 「이든」이 나을 지 모르지만. (계속) <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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