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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제 연례상정의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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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유엔」 총회를 앞두고 한국 문제 토의에 관한 우리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필요 이상 초조한 빛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분단된 남북의 통일을 인구비례에 의한 민주주의 방식의 선거로써 이룩하자는 대원칙은 우리나라의 오늘까지의 방침이요, 또 「유엔」의 대다수의 국가가 지지해 온 바인 것이다.
문제는 「유엔」 회원국이 근래에 와서 급작스럽게 늘어나며 국제정국이 여러 가지로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를 지원하는 투표수에 해마다 약간의 차이가 생기는 것 뿐이다. 이번의 21차 총회를 앞두고 미국으로부터 전하는 바는 현지의 우리 외교 당국자들과 미국 정부 당국간에도 종래와 다름없는 것이라는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일은 소위 「자동상정안의 지양」이란 말이 금년따라 우리 국내에서 왜 그리 유포되고 있는 가 하는 점이다.
「자동상정」이란 말인즉 해마다 꼭같은 형식으로 한국 문제가 「유엔」 총회의 의제로 올라간다는 말인 모양인데 한국 사람의 처지에서는 통일의 문제가 1년 한 번쯤 토론되는 일에 왜 불안스러운 태도로 남의 일같이 「지양」이니 무어니 하여야 하겠느냐. 해마다 꼭 같은 결의안이 총회에 상정되고 다수 회원국의 찬동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통일이 이룩되는 것이 아닌 이상, 무엇 때문에 돈도 적지 않게 쓰고 또 여러 나라와의 접촉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해야 할 것인 가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 사람일 수는 없다. 바로 작년엔가 영국의 외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런 말을 넌지시 던졌던 것이 의외로 우리나라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렸던 것 같다.

<2>영국과 미국은 세계의 대국으로서 그야말로 형제같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며 또 중립국 등을 상대로 복잡한 세계 문제를 요리해 나가는데 항상 보조를 맞추어 나가기에 바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때문에 그 때마다 당면한 중요 긴급문제가 아닌 기여의 문제에는 소홀하기 쉬울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유엔」의 한국 문제 토론의 예를 들면 휴전선상의 군사적 대립이나 판문점의 논전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 자유진영 대 공산진영의 논전은 극히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다른 새로운 중요문제의 토의에도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한국 문제를 해마다 총회에 상정시키느니 보다 해를 건너서 상정시키든가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사태가 생겼을 때에 토론에 붙였으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나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남북통일은 전 국민의 절실한 염원이요 역사적 과업인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분단의 고통이 어떤 것이며 원하는 통일의 과제와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천하에 호소할 장소가 어디냐 할 때 우리는 「유엔」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남북분단의 책임자가 곧 2차 대전의 전후 대책의 책임자요, 「유엔」 조직의 중심국가들인 것이다. 겸하여 6·25의 공산침략에 즈음해서는 그 침략의 배제와 통일부흥의 책임을 「유엔」 자신이 스스로 지고 나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영구·불란서 등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가 발을 벗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엔」은 그 자신의 책임으로서도 한국 문제를 소홀하게 다룰 수 없을 것이거니와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는 달리 길이 없는 이상 「유엔」과 그 관계국가에 대하여 한국 문제의 조속하고도 적절한 해결을 위하여 적극적인 협력을 구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만일에 한국 문제의 「유엔」 총회 상정이 소홀히 된다면 한국 문제와 그 실정에 소상치 못한 많은 나라의 기억에서 한국의 그림자는 점차 희미해 갈 것이다. 또 우리측에서 한국 문제가 총회에 해마다 상정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한다면 이는 우리 자신이 통일의 의욕을 저버리는 것이라고도 해석되기 쉬울 것이다.

<3>이제 우리는 통일의 의욕을 더욱 굳게 가지는 동시에 「유엔」 총회에 임하는 태도도 또한 더 적극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오늘의 정세에서는 우리의 통일이 언제 이룩되겠느냐 할 때 전도가 심히 아득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통일의 의욕을 더 굳게 가지고 통일의 방략을 위하여 더 크게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작년의 「유엔」 총회에서는 한국 문제의 토의가 대단히 비관적인 궁지에 빠지고 있었다. 제 1 위원회의 의제로서 맨 끝에 끼여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전년의 총회가 사실상 토의가 없었기 때문에 총회의 의제가 어느 때보다도 많았고 토론이 장황했다. 그런 때문에 한국 문제는 회기 내에 의제로 상정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많았다. 총회 폐회에 임박하여 우리 문제가 상정되느냐 마느냐 한 때에 미국측으로부터 두 차례나 의외의 권고 같은 정보가 들어 왔었다.
그 하나는 한국 정부 대표의 참가없이 통일에 관한 결의안만을 상정시키면 어떠냐, 대표참석 문제까지 토의하기에는 시간상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그 둘째가 제 1 위원회는 시간이 거의 없으니 특별위원회로 넘겼으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우리 대표단에서는 심각한 토의가 있었다. 결국은 「유엔」대사의 책임에서 두 가지를 다 거부하고 종래대로 적극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요행이라고 할까, 주위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뜻대로 종래와 같은 토의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문제는 내 나라의 통일이라는 최대의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에 우리 대표의 참가없이 토론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또 제 1 위원회가 작은 총회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우리 문제를 해마다 토론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제에 생소한 「특별위원회」에, 이리 저리 끌고 다닌다는 것은 국가 위신상 마땅치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태도였다. 큰 것에 눌려 남의 눈치만 보고 따라다니자는 것으로는 「나」라는 국가의 외교가 떳떳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 아니냐 하는 느낌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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