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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공격에 견제구만 던진 G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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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6일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김용 세계은행 총재,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부 차관,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이번 회의에서 미국과 IMF는 일본의 엔저 정책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 [모스크바 AP=뉴시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가 일본 정부의 공격적 ‘엔저 정책’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엉성한 견제구가 전부였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6일까지 이틀간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는 “경쟁적 통화 평가절하를 자제한다. 경쟁 목적의 환율 정책은 취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이는 공동선언문에 포함됐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제기한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 문제는 여기에 명시하지 않았다.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G20은 엔화 약세 현상을 무역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일본 정부의 의도적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그 대신 경제 회복을 위한 양적완화(통화량 확대) 정책의 부산물인 것으로 평가했다. 선언문에는 “각국의 통화 정책은 국내 시장의 물가 안정과 경제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에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회의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계 경제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최근 통화정책과 관련한 국가 간 갈등의 해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엔저 현상과 함께 아시아 통화들의 변동성이 커졌다”며 엔화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외신들은 중국과 브라질의 대표단에서도 엔화 약세로 인한 주변국의 피해를 언급한 것으로 보도했다. 엔화 가치는 지난해 11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집권한 뒤 최근까지 무제한 통화공급 정책 등의 영향으로 주변국 통화에 비해 15~20%나 떨어졌다.

 한국 등 일부 회원국들의 문제 제기가 선언문에 반영되지 않은 것은 미국이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고 유럽 회원국들이 이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회의 참석에 앞서 일본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환율 전쟁’과 같은 표현은 도가 지나친 면이 있다. 엔화 약세와 유로화 강세가 꼭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고 발언했다.

 뉴욕은행의 투자전략가 닐 멜러는 로이터 통신에 “일본은 G20의 성명을 (엔저)정책에 대한 승인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엔저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ING 그룹의 외환전략가 크리스 터너는 “이번 성명으로 일본 정부가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FT는 “경쟁을 위한 통화 절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현재의 행태들에 별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지만, 보다 공세적인 통화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장벽으로는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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