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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관“허리띠 졸라맨 보람” 주민“우리는 굶어 죽든 말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0호 05면

평양 시민들이 15일 ‘김정일화’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신화통신=뉴시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북한 주민의 여론을 전화 통화로 들어봤다. 통화가 가능한 주민들의 반응은 대개 김정일, 김정은 권력에 부정적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핵실험 당일인 12일, 일찌감치 국경지역에 사는 아는 주민과 통화를 했다. 짧은 대화였는데 그는 핵실험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13~14일에 걸쳐 이뤄진 통화에서 주민들은 핵실험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북한이 내부 매체로 이를 방송했기 때문이다.

긴급 전화 취재-3차 핵실험 직후 북한 민심은

“핵실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함경북도 회령에 사는 강순옥(37·가명)씨의 첫마디는 “솔직히 말해 미싸일이든 핵이든 우리 백성들이야 상관도 없습니다”였다. 그는 “먹고살기도 바쁘고 나라에선 해주는 게 하나도 없는데 미싸일을 쏘든 핵실험을 하든…배급이나 제대로 주고 장사나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 게 인민들이 바라는 것 아니겠나요? 세상에 20년이 다 되도록 먹을 걱정을 해야 하는 나라가 또 어데 있겠습니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이젠 믿지도 않아요…”라고 했다. 무얼 믿지 못하는 것인지를 다시 묻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다.

양강도 혜산시에 사는 김학수(50·가명)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냥 우리는 개, 돼지 인생입니다. 우리야 굶어 죽건 말건 하등에 쓸 데도 없는 미싸일이나 날리고 핵이나 터트리고…”라고 했다. 이어 “이젠 사람들도 그러려니 합니다. 언젠 우리 생각을 하기나 했답니까? 오히려 핵실험 했으니 또 국제(사회)가 압력을 넣겠구나 다들 그러지요. 나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단 말이 있지 않습니까? 빨리 끊어야 합니다. 오래 통화하면 들킵니다.”

그러나 국경지역에서 배치돼 있는 지금철(31·가명) 군관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핵실험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작년에는 미싸일도 성공했고요. 어쨌든 대단합니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언 땅에 배 붙이고 군사 복무를 하는 보람이 생깁니다. 이래야 미국놈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지 않을 거 아닙니까? 말끝마다 경제제재를 한다고 하니까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단 말입니다.” 하는 말이 얄미워서 “그래 놓고 너네들은 남에서 쌀을 보내면 먹는가”라고 했더니 “남조선에서도 그래서 우리한테 쌀을 안 보낸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북한 권력에 대한 충성심도 갖고 있으면서 남한과는 연락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이러니다.

물론 군인의 반응이 다 그렇지는 않다. 다른 국경지역에서 근무하는 군인 김영호(25·가명)씨는 사회 형편이 엉망인데 실험을 했다고 성토했다. 그는 “요즘은 뇌물이 너무 성행해서 군율이 말이 아닙니다. 병사들은 군관들에게, 군관들은 또 상급에게 이런 식으로 뇌물을 바치다 보니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전쟁 일어나면 보위 지도원 새끼 뒤통수에다 한 방 먹이겠다’고 합니다”고 했다. 또 “이런 판국에 핵실험을 한답시고 준전시라고…신발도 못 벗고 자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라며 “사실은 왜 준전시 상태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정세가 긴장한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보도에서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썩은 상태에서 핵이면 뭐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마다 통화 시간은 1~2분 정도였지만 그들을 찾는 데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통화가 수월치 않은 것은 연결 방식 때문이다. 주민들은 중국 국적의 전화를 늘 켜놓지 않고 끈 상태로 놓아두다 가끔 켜본다. 이런 상태에서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 ‘부재 중 전화’ 신호를 준 뒤 기다리면 이따금 주민이 전원을 켜보다 이를 발견하고 잠깐 전화로 신호를 준다. 그러면 서울에서 다시 전화를 거는 방식이다. 상대방이 불안해하거나 내켜 하지 않으면 연결은 아주 어려워진다. 통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렵게 연결됐는데, 평소에 전화를 해왔던 이들은 이번엔 유난히 몸을 사렸다. 길게 못한다고 했다. 김정은 체제가 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평양 거주 주민과는 연락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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