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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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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옛날 칠석날이 오면, 계집아이들은 길쌈과 바느질 솜씨를 늘려 달라고 기교제를 지냈고, 선비들은 장마철에 곰팡이 핀 책을 뜨거운 햇별에 쬐어 갈서라는 연중행사를 치렀다. 방직공장과 양장점이 성하고 책 한권 제대로 사지않고 귀동냥 눈요기만으로 어엿한 학사님이 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으니 기교니 폭서니 하는 것은 사라진 풍습.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정에 고금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이 근대화하면 할수록 보는 눈이 더 많아지고, 사회의 제도며 조직은 더욱 각박해져서 그에 비례해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진다. 요즘 같으면, 결코 대수롭지 않은 죄를 지어서 1년내내 헤어져 살아야 하는 견우와 직녀의 처지가 한스럽긴 하다. 그러나 3백65일을 두고 기다리고 그리워 한 보람이 있어 하룻밤의 재회가 허용되는 것만 고마운 일, 헤어져도 1년후의 기약이 있다.
36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외족에게 눌려 살았다는 것이 죄라면 또 몰라도, 세상 누구에게도 죄진 적이 없는 착한 민족이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38선매문에 기약없이 헤어져 살아야하는 처지에 비하면 견우 직녀의 처지는 차라리 약과이다. 공산도당이 망해 없어져서 비로소 민족의 오작교가 마련될 수 있고 그때를 초년대 후반으로 잡아도 앞으로 10년. 또 한번 만나면 다신 헤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 칠석의 전설과 다른 점이다.
공산당과 38선에 가로막혀 못 만나는 처지는 그렇다 치고, 같은 고장에서 나날이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도 끝내 마음과 마음이 만나지 않고, 나날이 멀어져가기만 하는 시점은 또 무엇인가. 권력을 가지고 서로 원수가 되고, 재부를 놓고 서로 헐뜯고, 그도 모자라서 치고 받고, 사기하곤 하는 못된 버릇은 언제부터 생긴것인가. 사색당쟁이란 과연 겨레의 고질인가.
서양 중세에는 해마다, 어느하루를 정해서 한고장에 사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한 햇동안에 쌓인 원한을 서로 푸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날을 「사랑의 날」이라고 불렀다. 우리에겐 오늘 칠석이 그런 구실을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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