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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피로 느낀 조국|재일 교포 2세들의 좌담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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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마다 8·15가 되면 해외에서 삶을 이어가는 교포들이 모국 한국을 찾아온다. 올해도 미국, 일본, 「홍콩」 등 여러 나라로부터 1천명에 가까운 교포들이 광복절의 기쁨을 함께 나누려고 귀국했다. 그 가운데 재일 한국청년동맹 소속의 젊은이 27명을 찾았다. 「반쪽발이」 란 씁쓸한 독백을 하는 재일 교포들의 실정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20대의 직업청년들 몇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중에 해방동이도 있나요?
이명자=저는 그 해 4월에 났습니다. 일본에서 나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자각은 학교에 갈 나이가 될 무렵에야 희미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말을 알아듣기는 해도 잘 하지 못합니다.
―교포들 가운데는 일본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데요?

<절반이상이 일본 성 갖고>
김재숙=네, 사실입니다. 우리 일행 27명 가운데도 약 반은 일본에서 일본 성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재일 교포들 중 일본 성을 쓰는 사람은 과반수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이명자=저 자신도 일본에선 「영정」라는 성을 쓰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김은택=해방 전 일제 하에서 소위 창씨를 강요당했던 일은 모두 알고있지 않습니까. 그중 해방 후에도 일본 땅에 남아서 살길을 찾아야했던 교포들은 여러 가지 불리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야 했는데 한국 성을 가지면 더욱 불리하고 또 일인들로부터 부당한 차별을 받기 때문에 창씨 당했던 일본 성을 그대로 쓰게된 것입니다.
김재숙=우리말도 잘못하고 우리 성도 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2세들은 거의 민족의식이란 게 없습니다. 특히 20대의 청년들은 조국에 관해 열등의식을 느끼고있어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은 없습니다.
―그러면 모국에 와보고 싶다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조일성=아니요. 모국의 참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은 모든 교포들의 희망입니다. 몸은 일본에 살아도 마음만은 모국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김은택=그리고 우리교포들이 서울을 찾아오는 것은 단순한 관광여행이 아니고 민족의식을 스스로 다짐하는 여행입니다.
이명자=지난 4일 동안에 본 것만으로도 무슨 선전책자를 읽은 것보다 몇 갑절이나 기분이 좋습니다.
김은택=그뿐 아니라 전에는 서울을 방문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분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우울한 소식이 많았는데, 요즘은 분명히 희망을 보여주는 방문소감을 말하는 이들이 많아 졌습니다. 확실히 우리 나라도 이제 뭔가 되고있는 것 같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는 이들을 자주 만나 보았습니다.
김재숙=사실 저는 5년 전에도 와 보았습니다마는 이번에 와보니 그때보다도 더 질서가 잡히고 분위기가 더 밝아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교포들이 모국의 모습을 보고가면 좋겠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면서 일본과 다른 점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한글간판서 조국 느끼고>
조일성=첫째 한글로 된 간판이었습니다. 한글 간판을 보기 전에는 일본에서 거리를 거니는 것과 다른 점을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김호순=일본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꼬마들의 장사꾼이 눈에 자주 띄더군요. 특히 「검」을 파는 아이들은 불쌍해서 좀 우울해지더군요.
김간부=서울 거리에 노점이 너무 많더군요. 상업자본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길도 좁은데 더 번잡해지고 보기에도 좋지 않더군요.

<거리의 인파는 실업자?>
우순수=「러쉬아워」가 아닌 때도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더군요. 아직도 실업자가 많은 모양이죠?
이명자=부산에서 첫눈에 띄는 것은 산꼭대기까지 뻗은 판잣집입니다. 그리고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빈부의 차가 일본보다 더 심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김창남=저는 자동차관계에 종사하는데 일본 자동차 값이 한국에서 훨씬 더 비싸다니 이상합니다.
그 외에 한가지는 일본학교에서 한국은 대륙의 문화를 일본에 전달한 교량역할만 했다고 배웠는데 이번에 와서 박물관과 고궁의 건축을 둘러보니 우리 나라 특유의 창의성이 나타나고 있더군요.
일본인들은 우리민족에게 배워간 역사를 왜곡화하려고 우리나라를 대륙문화전달의 교량이라고만 가르치는 모양입니다.
―우리정부나 모국동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조일성=우리말을 잘 못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이 따뜻이 대해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일본서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가는데 모국 동포들조차 「반쪽발이」라고 냉대하면 참으로 섭섭합니다.
「버스」속에서 「왜놈들」이란 말을 듣고 「재일 교포」라고 알려주었는데도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민족의식 다짐하는 귀국>
김창남=우리가 한국인다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또 서울에 와서는 일본에서 느끼지 않았던 동족의식을 갖고 접근해도 백안시하니 우리는 나라 없는 「이스라엘」사람 같은 착각까지 듭니다.
김은택=한·일 협정이 체결되고 국교가 이루어졌는데도 한국인은 일본에서 다른 외국인들처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경찰은 한국인을 하급인간 취급을 합니다. 이런 점 시정되도록 정부에서 힘써주셔야 겠습니다.
김재숙=모국방문 여권수속을 더 쉽게 해 주시면 합니다. 일본인이 서울에 오는데는 한 달이면 수속이 끝나는데, 우리가 내 나라에 오는데 3, 4개월 수속을 해야하니 답답합니다. 아무쪼록 모국정부와 동포들의 따뜻한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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