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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나의 솔직한 결혼생활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저, 4년 만에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로 복귀했어요. 지난 11월 10일부터 임성민씨의 뒤를 이어 남희석과 함께 SBS 토요 버라이어티쇼 ‘장미의 이름’ MC로 나섰거든요.

사실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된 데에는 뒷이야기가 있답니다. 원래 SBS 러브 FM ‘허수경의 러브러브’를 그만두고 KBS 2TV의 ‘아름다운 리빙’만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방송국 사정으로 ‘아름다운 리빙’이 없어지게 된 거예요. 그래서 아예 ‘이참에 잘됐다. 조금만 쉬어보자’ 했는데 갑자기 ‘장미의 이름’ MC 제의가 들어온 거예요.

‘장미의 이름’은 본격 여성 대상 프로그램이라 MC 제의가 더없이 반갑긴 했지만 그 오락프로그램과 내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였어요. 개편 전 포맷으론 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이야기들을 PD에게 했더니 며칠 고민 끝에 제가 원하는 분야, 가령 맛집이라든지 신기한 볼거리 같은 것 등을 코너로 넣어주더라구요.

오락프로그램을 하게 된 데에는 희석(개그맨 남희석)이의 권유도 컸어요. 희석이가 평소 저랑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거든요. 의외로 희석이와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여자 MC가 많지 않다나요(웃음).

희석이와의 인연은 오래됐어요. 희석이가 군대에 있을 때 당시 제가 진행하던 ‘정오의 희망곡’ ‘선택, 토요일이 좋다’를 참 좋아했대요. 한마디로 저의 왕 팬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희석이가 휴가 나왔을 때 방송국에 놀러 와서 자신의 이상형이라며 저랑 인사도 나눴구요. 그런 만남을 시작으로 급기야는 우리 프로그램의 게스트도 되고 그랬어요. 그때부터 호흡이 잘 맞았던 셈이지요.

그렇게 너무너무 친하게 지낼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만났어요. 희석이가 저한테 늘 고해성사를 하곤 했거든요. 자기가 잘못한 일, 양심에 걸리는 일을 저한테 이야기하고 나면 가슴이 탁 트인다고 하더라구요. 왜 꼭 저였냐구요? 제가 세상사를 너무 모르는 순진형이었기 때문이래요.

그때 희석이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개인사 때문에 미국도 갔다 오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어요. 그 뒤로 희석이가 변심해서(?) 이상형이 전인화씨로 바뀌더라구요(웃음).

이번에 같이 맡은 프로그램에서 전 희석이의 재치 있는 멘트를 옆에서 받아줄 수 있고, 벌여놓은 것을 수습하고, 그러면서 핵심을 놓치지 않고 끌어가려고 해요. 첫 녹화를 마치고 보니 둘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녹화 끝나고 나서 희석이 멘트요? 누나, 내 맘 변함 없는 거 알지? 그러더라구요(웃음). 자기 생각에도 변심한 게 미안했나봐요(웃음).

참, 그날 희석이가 집들이도 했어요. 새로 옮긴 집에 프로그램 스태프들을 초대한 거죠. 희석이 와이프는 마치 선녀 같더라구요. 얼굴도 예쁘고 마음은 더 예쁜 사람이에요. 이제 희석이는 자기 와이프한테 고해성사를 할 거예요(웃음).

그저께 희석이 와이프한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왔더라구요. 그날 집들이 음식이 모자라 쩔쩔매는 것을 제가 마침 갖고 있던 음식을 내놓고 도와줬었는데, 그게 고마웠던가봐요. 정말 희석이는 결혼 너무 잘했다니까요.

복막염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사연 저 얼마 전 무지무지 아팠답니다

저, 석 달 전쯤 복막염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거 아세요? 라디오 프로그램 ‘허수경의 러브러브’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날따라 배가 너무너무 아픈 거예요. 오죽 아팠으면 프로그램 진행 도중 청취자들에게 ‘저, 지금 너무 아파요’라고 했겠어요. 겨우 프로그램을 끝냈는데 바로 녹음 방송할 게 하나 있어서 한 시간 동안 또 일했어요. 그 일이 끝난 뒤에도 바로 집이나 병원에 갈 수 없었어요.

2시간 후에 ‘허수경의 아름다운 리빙’ 야외 촬영이 있었거든요. 그러니 어떡해요. 몸은 아픈데 야외 촬영은 해야 되고… 할 수 없이 잠깐 틈을 이용해 한의원에 가서 배가 너무 아프다며 간호사를 붙잡고 울었어요. 한의원에서 소화가 잘 안 된 것 같다고 침을 한 대 놔주더라구요.

그렇게 임시방편을 한 후에 야외 촬영을 마쳤고 밤 8시가 넘어서야 집에 가서 소화제를 먹고 자리에 누웠어요. 그런데 몇 시간 후 정말 미칠 정도로 배가 아파서 바닥을 뒹굴었어요. 남편(영화배우 백종학)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지금 일하고 있어 갈 수 없다며 119라도 불러줄까’ 그러더라구요.

어디 다른 방법이 있어야죠. 그렇게라도 해달라고 해서 119 앰뷸런스가 와서 절 병원으로 싣고 갔는데, 병원에서 검사를 몇 번 해도 진단을 못하는 거예요. 그러는 와중에 종학씨가 달려왔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복막염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의사들은 30분만 늦었더라면 생명이 위독할 뻔했다며 3시간 동안 수술을 했어요.

수술 후 일주일 동안 입원했는데 많이 힘들고 우울했어요. 회복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구요. 올해 삼재가 낀 해라서 그럴까요? 그로부터 얼마 후인 지난 추석 때는 친정집에서 기르던 진돗개에게 코를 물리는 불상사가 일어났어요.

사건은 이렇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종학씨가 제게 선물한 강아지 ‘산타’를 우리집에서 몇 달 동안 키우다가 친정집에 보냈거든요. 아무래도 개가 커지니까 우리집 같은 빌라보다는 마당 있는 친정집이 나을 것 같아서요.

오랜만에 저를 본 ‘산타’가 너무 좋아서 흥분하는 것을 본 제가 ‘산타’를 쓰다듬어주었어요. 그런데 ‘산타’ 옆에 그 문제의 진돗개가 있었거든요. 제가 너무 ‘산타’만 예뻐하는 것 같아서 ‘너도 예뻐’ 하며 진돗개 이마를 쓰다듬어준 게 화근이었어요.

순식간에 저한테 달려들더니 제 코를 물어버렸어요. 피가 줄줄 나고 또다시 119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답니다. 무려(!) 열 바늘 넘게 꿰매는 중상을 입었어요. 두 번이나 119 앰뷸런스 신세를 지다보니 요즘은 자나깨나 몸조심 생각밖에 없답니다.

3개월 전 분당으로 이사를 갔어요 저의 특별한 인테리어법 들어보실래요?

그러고 보니 결혼 1년 6개월 동안 이사를 세 번이나 했네요. 처음엔 종학씨가 살던 집에 신혼 살림을 들였는데 집이 좀 작았어요. 옆집에 제 남동생이 살면서 두 집을 거의 함께 쓰다시피 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역삼동으로 이사를 했고, 이번에는 또 전세 계약에 문제가 생겨서 몇 달 살지 못하고 이사를 했어요.

2003년 9월 입주 예정인 서울 봉천동 소재의 아파트를 분양받아놓은 상태라서 그 집에 들어가기까지는 내내 전세로 살 거예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분당의 한 빌라예요. 베란다에서 감나무가 보여 참 좋아요. 워낙 한적한 동네라 집에만 가면 몸이 편안해져요. 크게 집 꾸밈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 집에 들어와 있는 가구들은 모두 세 종류인데 제가 쓰던 가구, 종학씨가 쓰던 가구, 그리고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쓰던 가구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얼마 전에 가구 리폼을 했는데 체리목에 화이트 칠을 해서 아주 새로운 분위기가 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집의 컨셉은 오래된 느낌이에요.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새로 구입한 가구는 소파가 다예요. 이번 집의 특징은 한식 방을 하나 만들었다는 거예요. 시부모님이 쓰시던 한식 침상, 다리를 뺀 침대 등을 이용해 한번 꾸며봤어요. 이제 그 방은 손님 오시면 묵는 방 또는 부부싸움 하면 따로 자는 방으로 활용한답니다(웃음).

두번째 특징은 종학씨가 갖고 있던 오디오 시스템을 이용해 아예 오디오 방을 만든 거예요. 오래된 두꺼운 커튼을 방 안에 장막처럼 쳤더니 멋진 오디오 방이 되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종학씨는 이제 아예 그 소극장 같은 방에서 살다시피 한답니다.

나머지 식탁보, 러그, 액자, 바구니 등 생활 소품은 제가 직접 만든 것으로 꾸몄어요. 덕분에 우리집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제가 원하는 정감 있고 따뜻한 집이 됐어요.

‘아름다운 리빙’을 끝내면서 우리집을 공개했는데 전문가 도움 없이 손수 꾸민 티가 역력하고 옛날 거 활용한 게 호감을 샀는지 반응이 아주 좋더라구요.

최근에는 ‘장미의 이름’ 팀을 집에 초대하기도 했어요. 그날 전 고추냉이 소스를 얹은 샤브샤브 샐러드(제가 붙인 이름은 ‘풀 뜯는 소’), 중국식 닭날개 볶음(제가 붙인 이름은 ‘심심풀이 닭봉’), 중국식 스파게티 등을 내놓았어요. 반응요? 아주 좋았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전에 제가 진행하던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배웠더니 이제 저도 ‘선생님’이 되었답니다. 제 친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중국요리를 배우러 오기로 했거든요.

전 중국요리를 좋아하는 편인데, 중국요리를 알면 한식과도 잘 접목되고 식탁이 굉장히 풍성해져서 좋아요. 요리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제 자랑 하나 할까요? 우리 종학씨요. 그렇게 남 칭찬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제 요리만큼은 칭찬을 많이 해준답니다. “벌써 다 만들었어? 정말 재주는 좋아” 이런 식으로 말이죠.

결혼이란 제도 아래서 친구 같은 부부 사이로 지내기 이건 힘든 문젠가요?

다시는 결혼 안 한다던 여자와 평생 혼자 살겠다던 남자가 결혼하고 보니… 결혼 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결혼 8개월까지만 해도 결혼 생활이 예상했던 것과 비슷했어요. 재미없는 남편이지만 친구처럼 잘 지냈죠. 당시 우리는 남편이니까, 아내니까 하는 개념을 떠나서 집안일도 같이 하고 대등한 친구같이 지냈어요.

서로 다르게 30년 이상을 살아온 남녀가 어느 날부터 한집에서 함께 잘살기는 쉽지 않잖아요. 제가 보기엔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일이 가장 무모한 일인 것 같아 서로에 대해 내버려둔다 싶을 만큼 내버려두곤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사실 본심은 그게 아니었나봐요. 제가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2개를 동시에 하면서 갈등은 촉발되었답니다. 워낙 바쁘게 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 종학씨는 제가 매일같이 일 때문에 종종거리고 사는 게 이해가 안 됐나봐요. 바깥에서 일만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남편인데 집에 와봐야 저는 야간 촬영이다, 녹화가 늦어진다, 하며 집을 비우니 마음에 무척 안 들었나봐요.

처음에는 ‘일 줄여라, 자잘한 일은 그만둬라’ 하며 싫은 소리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제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이해시키려고 했어요. 일이 있으면 밤에도 하는 거고, 내가 꼭 필요한 자리라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말로 한참 설명을 하곤 했어요. 하지만 말로 시작하다보면 꼭 싸움으로 연결이 되더라구요.

종학씨는 갓 지어낸 밥으로 아침을 차리고 저녁도 같이 먹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저는 결혼 전엔 그걸 몰랐죠. 종학씨는 내심 아내의 케어(보살핌)를 원했던 것을. 종학씨는 나름대로 오래 참았던 건데 결국 제가 일을 하나 더함으로써 폭발한 거예요.

결혼하기 전에 종학씨의 그런 부분을 알았더라면 저도 마음의 준비를 했을 텐데, 몰랐던 부분이라 속은 상했지만 결국 제가 다 맞춰 나가기로 했어요. 다행히 전 집안일을 좋아하니까….

요즘요? 방송 없는 날은 종학씨에게 세 끼 더운밥 해주고 살아요. 어째 버릇을 좀 잘못 들이고 있는 것 같지만 데모도 해보고 싸움도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종학씨가 더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안 된다니까요(웃음). 그래서 저 요즘 조선시대 여인네처럼 살면서 도 닦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아이는 낳지 않을 거냐고 자꾸 물어보시는데… 아직은 계획이 없어요. 저는 아이를 키우는 일에 소질이 있을 것 같은데 종학씨는 아기 아빠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사실 결혼 생활 자체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에요. 종학씨가 아이한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볼래요.

그래도 결혼이 종학씨를 조금은 변화시켰어요. 아직 결혼 전인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한테 결혼하려면 저 같은 여자랑 하라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내가 아내라는 것을 기억이나 할까 싶을 정도로 애정 표현이 없는 편인데, 제가 얼마나 놀랬다구요.

또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를 부르는 호칭이 ‘우리 집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말인지 몰라도 전 느껴요. 제가 지금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사람을 조금씩 길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제가 요즘 가장 행복할 때는 집에서 뭔가를 꼬물꼬물 만들고 있을 때예요. 지난번에는 여름용 하얀 샌들을 아크릴로 한번 칠해봤는데 너무너무 재미있더라구요.

그렇게 정성스럽게 칠한 샌들을 강아지가 물어뜯긴 했지만. 집에 있으면 식탁보라도 만들 만큼 뭔가 생활 소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또 어떨 때는 인터넷 항해를 하기도 하고 책을 보거나 TV를 봐요. 전 그렇게 집에 있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올 한 해도 벌써 다 가고 있네요. 올해를 돌이켜보면 너무 시간이 짧았던 것 같아요. 특히 상반기가 굉장히 바빴고, 119 앰뷸런스에 몇 번이나 실려다닐 만큼 육체적으로 고생도 했구요. 내년에는 큰일만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종학씨와 저도 작은 행복을 느끼며 고마워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구요. 저희 그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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