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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안 웃을래?" 엽기개그 봇물

중앙일보

입력

무를 커다란 앞니로 갉아서 눈처럼 흩날리게 하는가 하면 사과를 앞니로 갈아 골을 만든 다음 실로 묶어 요요처럼 가지고 놀며 익살을 떠는 갈갈이 삼형제.

대형 플래스틱 생수통 안의 공기를 입으로 빨아들여 찌그러뜨리는 묘기를 선보이거나 웃통을 벗은 개그맨을 얼음 위에 엎어놓고 그의 팔 ·다리를 잡고 밀었다 당기기를 반복하는 킹콩 패밀리.시청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이 코너들은 개그의 차원을 넘어 ‘엽기쇼’라 할 만하다.

그런데 최근 이런 소재들을 앞세운 KBS2 '개그 콘서트'가 큰 인기다. 시청률 20%대로 오락프로 중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한때 주춤했던 코미디 프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개그 콘서트'에선 또 여장을 한 채 간드러진 목소리로 '선생님 선생님'하고 애교를 떠는 '봉숭아 학당'의 황마담과 옌벤 총각 강성범이 등장하는 '수다맨'코너에서도 '오버'는 멈추지 않는다.

MBC '코미디 하우스'에서 주목 받고 있는 '답답개그 철수와 인기'는 출연자들이 느리게 말을 함으로써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색다른 과장법을 선보인다.

SBS '코미디 쇼 오! 해피데이'의 '스사모'(스타를 사랑하는 모임) 는 팬클럽 창단식을 패러디하는 코너로 팬으로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오버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개그 콘서트'를 비롯 각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에서 최근 '뜨는'코너들은 '이래도 안 웃을래'라고 웃음을 '강요'하는 이른바 '오버(과장) 개그'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물론 오버개그가 있었다. 그러나 그땐 어설픈 구성과 지나친 과장으로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예상을 깨고 젊은이들에게 은근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젊은 세대들이 엽기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개그라는 장르의 폭을 넓게 잡는다는 얘기다. 여기게 무조건적인 과장으로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패러디와 출연자의 개인기, 그리고 사회 비판적 요소를 가미해 시청자의 구미를 당긴다.

이런 오버 개그에 대해 '유치하다''과장이 지나치다'란 시청자들의 불만이 개그 프로 홈페이지에 올라오고 있고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이문세나 주병진, 그리고 서경석 등이 보여준, 말 자체로 현세대를 꼬집던 신선한 웃음 방식이 점차 찾아보기가 어려워 진 것도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세태에 따라 개그도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올해 대중 문화의 핵심장르인 영화의 흥행 코드는 엽기와 폭력 두 단어로 요약된다. 엽기와 폭력 또한 과장의 또 다른 형태임을 감안하면 바야흐로 대중 문화의 중심에는 '화려한 과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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