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고정관념을 헤쳐본다-모성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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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술이 거나하게 몇 순배 돌았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여보게 왜 이러나? 울지 말고 말 좀 하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
『흑흑…나는 불효 막심일세. 우리 어머니가 콩나물 장수하면서 나를 공부시켰는데, 불쌍한 어머니를 한번도 호강시켜 드리지 못했네…이 모양으로 술만 먹고….』
이 친구는 어머니의 희생 앞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이 값진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에게 있어 모성애가 한갓 된 본능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 증거로 자기 아이를 키우지 않고 아무데나 갔다 버리는 야만종족이 지금도 있다. 모성애는 높은 도덕성의 발로요 정신적인 극기다. 문화가 발달된 종족일수록 모성애가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옛날부터 높은 수준의 도덕문화를 가져온 우리민족이 모성애가 각별히 깊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일에서나 마찬가지로 모성애도 지나치면 좋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듯 하다. 앞에서 본 것 같은 허약한 친구가 생각나기 쉬운 것이다. 그는 「모성확대증」이라고 할 일종의 병에 걸려 있다고 하겠다. 어머니가 고생했으면 했지 그렇다고 빙충맞게 끽끽 눈물 짤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있어 어머니는 너무나 큰 가책과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주는 경향이 있다.
사회상의 거울이라고 할 영화에 이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영화는 거의 예외 없이 심한 「모성확대증」을 나타낸다. 한없이 착하고 인자한 어머니와 매정하고 철없는 딸, 또는 애달프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나이의 갈등과 참회와 넋두리 등등. 한결같이 끈적끈적하고 찝찔한 이야기들이다.
자식을 사랑하고 그 자식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는 일은 귀중한 일이지만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어머니의 은혜 때문에 자식이 질식할 것 같은 중압감에 사로잡힌다든지, 엄마의 품만 그리워하게 된다면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모성애에도 절제가 필요할 것 같다. 자식을 독립된 인격으로 키워서 어머니 없이도 꿋꿋이 살 수 있고, 끈끈한 핏줄이 닿지 않는 생판 관계없는 남과 함께 협동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바람직한 모성애의 모습이 아닐까?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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