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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위반이냐, 정신위배냐-홍종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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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관계는 어느 나라의 경우보다도 어려운 점이 많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약이나 협정의 어떤 규정이나 문구의 해석상 시비는 그 어느 것이나 참다운 이웃이 될 것이냐 아니냐 하는 신의의 정신에 달렸다 할 것이다. 벌써 그 시비는 일본이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대원칙을 앞세우고 있으면서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괴뢰와 버젓이 통상을 함으로써 한반도에 「두개의 한국」을 사실상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데서 한·일 국교정상화의 근본정신은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 한·일 조약의 근본정신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이 「북괴」의 기술자 세 명을 입국시키려는 문제를 중심으로 일본의 「신의」를 따지는 가운데 무엇인가 불투명한 일이 우리 정부 내에서 두 가지 있었다. 그 하나는 일본이 신의를 저버린 태도를 규탄하며 항의하는 가운데 제1단계의 조치에서 제2단계 조치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던 7월 하순에 우리 외무부에서 일본외상의 서한과 일본대사의 말을 듣고 일본의 태도를 받아들일 만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시 수일 후에 일본의 북괴기술자 입국허가는 끝까지 저지시켜야 한다고 전일의 받아들일만한 것이었다고 하던 태도를 번복한 것이 그 하나요, 그 다음 이 최근 국회에서 일본의 태도는 조약 「위반」이냐, 조약정신의 위반이냐 하는 문제로 법무차관과 법무장관이 「조약위반은 아니고 정신의 위반」이라고 했다가 국회의 여·야의 반박으로 마침내는 「실언 취소」라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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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우리는 우리정부의 일본에 대한 정책의 근본정신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투명치 않은 인상을 받는다.
일본의 「시이나」 외상의 서한이나 「기무라」 일본대사의 말 또는 구상서라고도 전하는 내용이 과연 믿을만한 것이냐 아니냐, 또는 「기무라」 대사의 말 또 구상서란 것이 외교상 구속력을 가진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쯤은 충분히 검토되고 난 뒤에 그 태도가 표명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연고로 저간의 항의와 규탄의 조치는 철회할 듯이 일본측 서한을 받아들일 것같이 말했다가 다시 그것을 번복하고 「강경」한 태도로 돌아가야 했던가. 여기에는 단순한 외교문서검토의 절차나 그 해석에 관련된 문제냐 무엇이냐. 그리고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벌어진 논의에서 법무차관과 장관이 일본의 태도가 「조약위반」은 아니고 「정신의 위반」이라고 한 것은 법률전문가로서 문구나 조문구절의 소위 법률적 해석이 어떻다는 것인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조약위반이라고 하면 조약의 법률상 구속력 내지는 그 효력의 범위를 확대했을 경우의 어떤 어려운 무엇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 국민의 이번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로 말한다면 조약의 정신에 위반된다고 하는 것은 조약당사자의 정신을 제쳐놓고 다만 형식의 허수아비 놀음에 불과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약의 정신이 무시되고 또 조약을 성실히 이행할 정신이 없는 자라 하면 조약상대국은 상대가 될 수 없는 허수아비가 될 뿐 아니라 허수아비를 상대로 하는 그 자신은 무엇이 될 것이냐.
그러면 법무차관과 장관의 「실언취소」는 「정신의 위반」이 결국은 「조약위반」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 무엇이냐, 정부는 한번 더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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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앞으로 더 복잡하고 말썽이 더 많을 것이다. 상대가 일본인이상, 그들을 상대로 하는 우리의 정책은 이제 다시 근본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다.
그는 일본 그것을 따지는 반면에 우리의 일본에 대하는 태도-어떤 이웃으로 대하고 어느 정도로 주고받는 교제를 해야 할 것이냐, 일본으로부터 받아야 할 것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받아들인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과연 어느 정도로 도움이 될 것이냐, 앞으로 어느 정도의 괴로움이 있다하더라도 「신의」를 존중치 않는 일본으로 하여금 진정한 반성이 있기까지 저들과의 주고받는 깊은 교제를 당분간 중단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느냐…하는 것을 이제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아닌가 한다.
이대야말로 우리는 일본 사람들의 「정신」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정신」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근 반세기동안 일본의 악독한 침략지배에서 잃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피해가 가장 큰 것은 그들의 강제에 의한 문화적 침략이었다 할 것이다. 즉 민족정신-독립정신이 많이 헐뜯기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독립국가를 이룩한 오늘 정치적 독립, 경제적 독립이 긴급한 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국민의 정신적 독립이 또한 긴급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침략이 다시 닥쳐온다면 그것은 경제적 침략이요 문화적 침략일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무서운 것은 문화적 침략-우리의 독립정신을 좀먹는 문화적 침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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