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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박사 분석] 상. 절망하는 박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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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01~2004년 서울대에서 배출된 박사 열 명 중 네 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고급인력 양성 시스템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학위 취득 당시 평균 연령은 37.6세다. 대학.연구소.기업체 등 사회 곳곳에서 이미 '허리' 역할을 할 나이다. 하지만 박사 시장의 동맥경화로 인해 이들이 연구와 학문에 전력을 쏟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국내 최대 박사 양성 집단인 서울대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잠재적 실업자 양산=본지 취재팀의 확인 결과 조사 대상 2684명 중 정규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절반 수준(49.4%)이었다. 나머지는 시간강사.임시직연구원.박사후 과정 같은 비정규직이거나 무직 또는 확인불명 상태였다.

2001년 학위 취득자의 정규직 비율은 53.9%, 2004년은 46.3%였다. 학위취득 시점에 상관없이 정규직이 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영문과의 경우 4년간 31명의 박사가 나왔으나 단 두 명만 교수로 임용됐다. 나머지 29명은 시간강사다. 또 서울대가 최정상인 국문과조차 69명 중 50명이 전국 대학을 떠돌고 있는 것으로 취재됐다.

인문대 출신은 10명 중 7명, 자연대는 10명 중 5명꼴로 비정규직이었다. 인문대는 사회적 수요가 워낙 적어서, 자연대는 해외 박사와의 경쟁에서 밀리자 박사후 과정을 밟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비율은 인문대(61.1%)가 가장 높고 생활과학대.경영대.사범대.사회대 순이다. 서울대 본부 관계자는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이 많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전체 직업별로 보면 연구원(33%)이 가장 많고 ▶기업체 근무(15.6%)▶박사후 과정(13.6%)▶시간강사(10.2%)▶교수(8.5%) 순이다. 연구원(885명)의 40%는 비정규직이었다. 사회대 연구원 중 52%, 공대는 37.5%가 비정규직이었다. 기업체 입사는 공대.자연대(84%)가 독식했다. 공대는 970명 가운데 18%가 삼성 계열사에 들어갔다. 특히 기업체와 민간연구소 입사자를 합치면 공학박사의 41%가 삼성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문대 출신은 기업체 문턱을 한 명도 넘지 못했다. 경영대와 생활과학대도 두 명과 한 명에 그쳤다.

◆바늘구멍 교수직=4년간 229명(8.5%)만 교수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위를 딴 사람도 28명으로 취재돼 실제로는 201명만이 서울대 박사 학위를 달고 교수가 됐다. 서울대에 11명, 지방 국립.사립대에 52명과 73명이 임용됐다. 특히 물리학부는 101명 가운데 한 명도 임용되지 않아 경쟁력 상실의 단면을 보여줬다. 박삼옥 사회대학장은 "인문.사회대는 외국 박사는 물론 모교 출신을 많이 뽑는 지방대에도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학위 취득기간=평균 5.8년이 걸렸다. 특히 인문대가 8.2년으로 가장 길었다. 생계를 해결하며 공부해야 하는 데다 미래가 불투명해 휴학이 잦았기 때문이다. 사회대와 법대는 7.3년, 자연대와 공대는 5.5년이 소요됐다. 반면 간호대는 평균 3.8년으로 취득기간이 가장 짧았다.

◆탐사기획팀 = 양영유.정용환.민동기 기자
김상진.노은미.박재명.이민영 인턴기자
제보 =, 02-751-5677

*** 바로잡습니다

3월 30일자 5면 '박사공장, 서울대 박사 2684명 분석' 기사 중 "물리학부는 101명 (2001~2004년 학위 취득자) 가운데 한 명도 (교수로) 임용되지 않았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기에 바로잡습니다. 서울대 물리학부는 "이기주(2001년 취득) 박사가 지난해 3월 충남대 교수로, 박노정(2002년 취득) .박시현(2004년 취득) 박사가 올 3월 각각 단국대와 조선대 교수로 임용됐다"고 밝혀왔습니다. 본지가 서울대에서 입수한 박사학위자 진로 현황(올 2월 기준) 자료에는 이기주.박시현 박사는 박사후 과정, 박노정 박사는 성균관대 연구원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직접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것은 취재팀의 실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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