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탐험 (44) - 그들만의 리그

중앙일보

입력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당시 껌회사의 회장이자 시카고 컵스의 구단주였던 필립 리글리는 어떤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야구에 관심을 계속 갖도록 만들 수 있을 것 인가?”

전쟁중에도 메이저리그는 계속되었지만 사람들은 그전처럼 야구에 열광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더구나 조 디마지오 등 많은 젊은 야구스타들이 군대에 소집되었기 때문에 경기 자체가 맥이 빠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리글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내게 된다.
“여자들이 야구를 하면 어떨까?”

사실 리글리의 아이디어는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전역에는 무려 4만여명의 소프트볼 세미프로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야구는 아주 생소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곧바로 리글리의 생각은 실행으로 옯겨졌다. 그 해 5월에 시카고에서 열린 트리이아웃에서는 수백명의 여성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락포드 피치스(The Rockford Peaches), 러신 벨스(Racine Belles), 케노사 코메츠(Kenosha Comets), 사우스벤드 블루삭스(South Bend Blue Sox) 등 4팀으로 AAGPBL(All American Girls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미국 여성 프로야구 리그)시작되었다.

여자 프로야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리그는 8개팀으로 확대되었다.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의 경기보다는 경기 외적인 요소 덕분이었다.

‘여성미’는 그들의 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우선 여자야구 선수들은 유니폼으로 바지대신에 미니스커트를 입어야 했다. 선수들이 플레이 하는데 있어 한없이 신경쓰이는 복장이었지만 관중들로서는 충분히 눈요기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리글리는 여자야구 선수들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화장품회사와 계약을 맺고 챠밍스쿨까지 운영을 했었다.

선수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여성미를 유지하기 위한 엄격한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 늘 화장한 얼굴에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어야 했다. 그러지 않은 모습이 발각될 경우 50달러 씩의 벌금이 어김없이 부과되었다.

때문에 시합전 선수들은 경기 준비하는 시간보다는 화장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심지어 어떤 선수는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덕아웃으로 불려나오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런 여성들의 리그의 시도에 많은 이들은 환호를 보내기도 했지만 냉소와 질시 또한 만만치 않았다. 당시만해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사회현실에서 ‘야구를 쇼로 만든다.’는 냉대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많은 제약과 냉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의욕만큼은 남성들의 리그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들이 관중들을 사로잡은 것은 미니스커트 유니폼이나 화장한 얼굴이 아닌 성실한 플레이와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이었다.

그것은 여자프로야구를 팬서비스 차원의 오락적인 요소로만 생각했던 경영진의 의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전쟁기간 동안에만 진행하려는 당초 의도와는 달리 ‘그들만의 리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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