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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중국 경제 대장정] 모시모시-여기는 '다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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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東京)의 한 자동현금입출금기(ATM)앞. 사용법을 몰라 수화기를 들고 콜센터의 안내원을 부른다.

중국인 특유의 억양을 쓰는 안내원이 나와 정확한 일본어로 차근차근 작동법을 알려준다. 도쿄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중국인이라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중국에서 일하는 중국인'이다. 도쿄에 본사를 둔 소비자금융회사 레이크는 최근 다롄(大連)에 콜센터를 설치하고 일본내 무인점포들과 국제전용회선으로 연결했다.

일본어가 능통한 중국인을 안내원으로 고용해 일본의 고객이 전화를 들면 자동으로 국제회선을 통해 응대하도록 했다.

일본전국 고객들의 데이터 관리도 이곳에서 한다. 통신비가 다소 들지만 비싼 땅값과 인건비를 주고 일본에 콜센터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는 계산이다.

레이크의 다롄 콜센터는 내년초부터 본격 가동된다. 이 회사 홍보담당 마쓰무라 타다시(松村正)는 "단순한 콜센터 이외에 고객지원이나 정보처리 등 다양한 사무를 다롄에서 일괄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롄이 일본경제권으로 녹아들어 가고 있는 한 현장이다. 다른 일본 기업들은 레이크의 실험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서비스업의 이전이 성공을 거두면 중국으로 달려나가는 일본기업들의 기어가 한 단계 더 높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제조업에서는 다롄은 일본 소비시장을 위한 생산기지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 도쿄의 전자상가 아키하바라(秋葉原)의 대형 양판점에는 다롄에서 갓 실어온 도시바(東芝)의 최신형 디지틀TV와 플라즈마TV가 진열돼있다.

앞면에는 'TOSHIBA', 뒷편에는 'MADE IN CHINA'가 선명하다. 도시바는 다롄에서 연간 1백30만대의 TV를 생산해 일본서 판매하고 있다. 다롄 도시바TV 마쓰우라 준이치(松浦純一)사장은 "부품개발과 설계부문도 다롄으로 옮겨왔다"며 "물류비용을 포함해도 일본보다 14%정도 싸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의류는 어떤가. 대형 남성복업체 아오야마(靑山)상사는 다롄의 군복공장에서 기성복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파견된 일본직원이 현장에서 깐깐하게 체크하면서 '원위치'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그덕에 품질이 점점 높아져 아오야마상사는 '수츠 컴패니'라는 인기 브랜드 기성복을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 들여오고 있다.

값도 싸졌다. 올가을 일본 남성복 시장에서 기성복의 최저가가 한벌에 8천엔으로까지 떨어졌다.

다롄 등의 공장에서 만들어 들여왔기 때문에 가격파괴가 가능하다. 바느질이 삐딱하거나 실밥이 터져나오는 '과거의 중국산 옷'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잘만 고르면 이탈리아 원단을 사용한 것도 있다.

이밖에 일본어 구사인력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다롄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는 일본 IT기업이 나오는가 하면 다롄에서 원문을 교정본뒤 도쿄로 전송받아 제본하는 출판사도 있다.

이처럼 일본에서 바라본 다롄은 중국이 아니라 시차없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일본 국내 경제권'으로 다가와있다. 1백년전 일본 관동군이 무력으로 접수한 다롄에서 이제 중일경제의 융합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마찰도 있다. 상당부분 다롄항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가는 농산물이 올해는 중일무역마찰의 불씨가 됐다.

일본은 중국산 파.표고버섯.다다미용 왕골에 대해 잠정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해제했으나 중국은 아직 보복조치를 풀지 않고 있다. 이때문인지 일본에선 중국경계론이 자주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부메랑 효과나 산업공동화가 단골메뉴다.

그러나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실용주의 노선만큼은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역시 재계의 핵심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활용론이다.

도요타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회장은 "떠나는 버스를 놓치면 안된다"며 중국진출을 결정했고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회장도 신형 노트북PC '바이오'의 중국생산을 발표했다.

원로급인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교세라 명예회장도 한 경제주간지의 기고문에서 "중국과 적대하지 말고 불가분의 관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재(경제연구소).남윤호(도쿄 특파원).양선희(산업부).정경민(경제부)기자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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