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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챔피언의 기업가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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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SKK GSB 원장

새해 우리 경제 최대 화두는 중소기업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스타 대기업에만 의존해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힘들 뿐 아니라 중산층 붕괴, 청년실업 같은 사회적 현안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과 경영학자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독일의 중소기업에서 그 해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뜻하는 독일어 ‘미텔슈탄트(Mittelstand)’는 독일 사회의 허리를 지탱하는 중산층을 뜻하기도 한다. 독일의 중소기업 중 무려 32만 개 기업이 수출에 참여하며 그중 1500개는 ‘히든 챔피언’급 기업으로 세계 시장 1, 2위를 다투는 강소기업들이다. 독일 중소기업은 청년 직업 교육의 80%를 담당할 뿐 아니라 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며 독일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독일 중소기업이 가진 핵심 경쟁력 중 하나는 기업가의 리더십이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 중에는 100년 이상 가업을 승계해 온 가족기업이 유난히 많다. 1853년 라이프치히 대장장이였던 율리우스 블뤼트너가 창업한 블뤼트너는 수제 그랜드 피아노 분야의 세계적인 강소기업이다. 현재는 크리스티앙 블뤼트너 하슬러와 크누트 블뤼트너 하슬러 형제가 5대째 가업을 이끌고 있다. 형제는 아직도 분업화된 대량 생산 방식 대신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일일이 깎아 한 대의 피아노를 만드는 수제 방식을 고수한다. 이렇게 제작된 명품 피아노는 최고 1억5000만원에 팔려나간다. 가업을 위해 의사직을 포기한 형 크리스티앙은 회사의 가장 큰 자산으로 수십 년간 함께해 온 숙련된 직원들을 꼽는다. 블뤼트너의 목표는 세계 최대의 피아노 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피아노를 만드는 회사로 남는 것이다.

 블뤼트너와 같이 가치를 추구하는 리더십은 ‘히든 챔피언’을 이끄는 독일의 경영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미덕이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일찍부터 해외로 진출하는 모험심과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외곬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은 유능한 직원을 키우기 위해 월급까지 주며 직업교육을 실시한다. 독일의 중소기업가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지역사회 청년을 위한 직업교육과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히든 챔피언을 키우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못지않게 이들을 이끌 리더 양성이 중요하다. 경영자를 양성하는 MBA 커리큘럼의 국제적 추세는 리더십과 협업, 소통 능력을 포괄하는 이른바 ‘소프트 스킬’을 중시하고 있다. 기존 MBA 과정이 회계, 재무, 마케팅 등 세부적인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직원들과 비전을 공유하고 그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프트 스킬’을 갖춘 리더십이 주목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에 관한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겸비한 융합형 리더를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유 필 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