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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PD"1박2일 떠나고 이승기가 전화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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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히트 메이커 나영석(37) PD가 KBS를 퇴사하고 CJ E&M으로 회사를 옮겼다. 자전 에세이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를 내기도 했다.

‘1박 2일’은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얼마간 계속되다가 시즌1의 마무리를 맞았다. 5년간 모든 걸 바쳐왔던 일을 끝낸 그는 허탈함을 느꼈다. 그 마음을 달래러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책을 쓰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프로그램 종영 즈음 회사를 관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이제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하필 회사가 파업 중이었어요. 분위기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놀멘놀멘’ 한참을 쉬었죠.

그렇게 놀고 있는데 (이)승기한테서 밥 먹자고 전화가 왔어요. 오랜만에 만나서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하다가 승기가 요즘 뭐 생각하고 있는 것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없…’ 하다가 저도 모르게 줄줄 이야기를 했어요. 생각하고 있던 게 많았더라고요.

승기가 리액션이 굉장히 좋아요. 앞에서 ‘오, 감독님. 그건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니까 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죠. 우습게도 그때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알았어요. 일을 그만두려는 이유가 101가지 있었는데, 계속 하고 싶은 이유 한 가지가 그 101가지를 덮고도 남겠더라고요. 그냥 좋다는 것.”

같은 날 그는 이우정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는 ‘응답하라 1997’을 쓰고 있었다. 이 드라마는 방영 후 초대박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했던 그는 당시 이 작가에게 망할 거라는 망언을 했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했더니 빠순이 드라마를 쓰고 있대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너 미쳤어? 정신 차려. 네 위치를 생각해야지. 너 벌써 30대 후반이야. ‘1박 2일’ 히트시키고 너한테 백지 수표 주면서 오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드라마를 쓴다고? 내 말 똑똑히 들어라. 일단 그 드라마 재미없을 것 같고 100% 망해.

‘1박 2일’ 후광만으로도 예능계에서 최소 5년은 걱정 없이 먹고살 수 있는데 괜히 커리어 갉아먹을 짓 하지 마.’ 그랬더니 이 친구가 ‘망하면 망하는 거지 뭐, ‘1박 2일’은 잘될 줄 알고 시작했느냐’면서 오히려 재미있다는 거예요. 그 말에 ‘야, 너는 재미로 일을 해?’라고 하고는 스스로 깜짝 놀랐어요.

후배들에게 늘 원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하라고 하면서 정작 저는 어느 순간부터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살고 있었던 거예요. 나도 원래는 이 친구 같은 생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손에 쥔 떡을 하나도 안 놓으려고 하고 있었어요.

‘1박 2일’의 후광이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예능을 해야 하고, 유명한 PD가 된 커리어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전적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사람이 어떻게 창의적인 일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 친구는 벌써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했는데 아직 저는 ‘1박 2일’의 후광에 갇혀 발버둥치고 있었던 거죠. 그 친구의 배포를 보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재밌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제일 즐거울 때는 자신의 심장 박동과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그는 10년 전 ‘산장 미팅 장미의 전쟁’을 만들 때의 가슴 떨리게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과 다시 한 번 가슴 뛰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내 그들과 다시 의기투합. 새로운 회사에서 과거의 동지들과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돌아온 김C가 음반을 냈다고 가져왔어요. 들었는데 ‘뭐 이런 개떡 같은 음악이 다 있나’ 싶더라고요. ‘자아를 찾으라고 보내줬더니 고작 이런 음악을 만들어 왔어’라는 욕이 나올 정도로 난해했어요. 하지만 김C에게는 그게 스스로 고민하고 찾은 답이었던 거예요.

누가 뭐라고 하든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한 거죠.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요. 김C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백’ 같은 멜로디 라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금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한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하는 한 소위 말하는 히트는 언제든 낼 수 있는 사람이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새 회사에 가서 내놓은 프로그램이 망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망해도 마흔이죠. 어차피 레이스는 기니까. 가슴 뛰는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한순간 흥하고 망하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이 자리에 오기 직전까지 회의를 하고 왔는데 아주 재미있어요.”

조영재 기자
사진=이진하(studio lamp), 중앙포토,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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