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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볍게 버려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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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호 28면

괴테는 73세의 나이에 19세 소녀인 울리케를 열렬히 사랑했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집요하게 곁을 맴돌았고, 급기야 청혼까지 했지만 결국 거부당했다. 괴테는 그 실연의 아픔을 바탕으로 ‘마리엔바트의 비가’라는 명작을 남겼다.
“꽃이 모두 져버린 이날 / 다시 만나기를 희망할 수 있을까? / 천국과 지옥이 네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있다 /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 더 이상 절망하지 말라! 그녀가 천국의 문으로 들어와 / 두 팔로 너를 안아주리라.”
청년의 심정과 다를 바 없는 노년의 괴테.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몸은 마음 같지 않다. 그래서 더 아프고 서글픈 것이다.

[경제·경영 트렌드] ‘2불 4고 복 받자’ ⑥ 고령화

노인용품 쇼핑몰 ‘골드바이올린’ 홈페이지.

노년층은 이제 더 이상 노인으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그보다는 ‘실버’ 혹은 ‘시니어’로 불리길 원한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법을 열심히 배우고 은퇴 후에도 원하는 일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취업자 통계를 낸 1963년 이후 처음으로 60대 남자의 취업자수가 20대 남자의 취업자수를 앞섰다. 이렇듯 능동적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요즘의 노년층을 ‘액티브 시니어’ ‘스마트 시니어’라고도 부른다. 그런 그들에게 ‘나이’만을 강조하며 노약자석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배려가 아닐 수도 있다.

요즘의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10~15세 정도 더 젊게 인식한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12월 TV홈쇼핑에서 30, 40대를 타깃으로 기획한 방한부츠가 대부분 50, 60대에게 팔렸다고 한다. 날마다 미디어를 통해 젊은이들의 패션 감각과 세련된 취향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젊고 세련돼 보이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킴벌리 클라크’는 노인용 기저귀 ‘디펜드’ 광고에 50대 초반의 몸매 좋은 남자가 세련된 중년 여성을 유혹하는 장면을 넣었다. 무늬도 젊은이들의 속옷처럼 세련되게 했다. 그래서 시니어 고객들은 마치 속옷을 사는 기분으로 자연스레 ‘디펜드’를 구매한다. 미국의 시니어용 제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골드 바이올린’사 역시 세련된 디자인을 중요시한다. 돋보기 안경을 걸 수 있는 장식이 달린 세련된 목걸이, 다채로운 색상의 잘빠진 지팡이, 어디 열쇠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 집 모양, 차 모양의 열쇠 등 노년층의 필요에 꼭 맞는 감각적인 디자인을 구현했다.

이렇듯 시니어를 공략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시니어를 버려야 한다. 시니어를 위한 제품을 만들더라도 ‘늙음’을 부각시키면 ‘젊고 싶은’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뿐 환영받지 못한다. 일례로 미국의 의류회사 갭(Gap)은 2000년대 중반 ‘포스 앤 타운’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시니어 여성들을 위한 기능성 청바지를 만들었지만 결국 사업을 접었다. ‘몸매가 더 이상 좋지 않은 50~60대 여성을 위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풍긴 탓이다. 그 청바지를 입는 것 자체가 자신이 늙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 되니 시니어 고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니어들이 젊은이들과 똑같을 수는 없다. 마음이 아무리 청춘이라도, 얼굴이 아무리 동안이라도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기능이 쇠퇴해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그들의 아픔을 배려하되 티가 나지 않아야 한다. ‘당신이 늙어서 우리가 이만큼 배려하는 겁니다’라고 떠벌리는 식이 되면 안 된다. 미국 최대의 약국 체인점 ‘CVS케어마크’는 티 나지 않는 배려로 시니어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우선 바닥에 카펫을 깔아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줄였고, 매장 입구의 높은 턱을 없앴다. 어쩔 수 없이 턱이 있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부분을 노란색으로 칠해서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했으며, 선반의 높이도 기존의 72인치에서 60인치로 낮춰 물건을 꺼내기 쉽게 만들었다. 덕분에 시니어 고객들은 노인 취급을 받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원하는 약을 사갈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시니어 산업이 2020년까지 12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유통업계에선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제품 및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홈쇼핑은 보청기를 판매하고, 마트는 시니어용 의료기기 등의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늙는다는 것은 이제껏 입어 본 적이 없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이다”라고 시인 로스케는 말했다. 마침 설이다. 이번 설에 만나뵙는 시니어들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닌 큰오빠, 큰언니로 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선물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2불 4고 복 받자’는 불편·불안, 고통·고비용·고독·고령화, 복잡 등 고객의 아픔을 압축한 7개 단어로 만든 일종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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