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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세비 삭감,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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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민주통합당이 이달 초 정치쇄신 차원에서 국회의원 세비를 30%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의원총회에서 결의한 것을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 놓고 “정치권이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선 자기 희생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과 “이벤트성 개혁보다 정치문화를 바꿔 나가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엇갈린다. 찬반 두 목소리를 들어봤다.

정치 혐오 극복하려는 노력 폄하해선 안 돼

이종수
한성대 교수
행정학과

민주통합당은 이달 초 대선 패배의 원인을 진단하는 워크숍에서 ‘민주당의 신조’라는 정치쇄신안을 결의했다. 이 결의안에는 ▶세비 30% 삭감 ▶의원연금의 조건 없는 폐지 ▶의원 겸직 금지 등 7개 항의 정치쇄신안이 포함돼 있다. 정치적 의도야 어떻든, 결말이 어떻게 나든 국민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라고 본다. 정치쇄신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세비 삭감이 정치쇄신의 본질이 아니며 세비 삭감이 오히려 의회정치를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또한 세비 삭감 결의가 당내 문제의 표출을 덮기 위한 정치적 쇼에 불과한 것으로 비판할 수도 있다. 당장 민주당 의원 가운데서도 세비 삭감 결의안이 정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과거 행적을 볼 때도 그런 판단을 할 여지를 남긴다. 지난해 4·11총선에서 한목소리로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의원들이 같은 해 9월 국회 운영위 예산심의 과정에선 오히려 세비 20% 인상을 추진한 데서도 이번 삭감 결의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번 삭감 결의안의 초점은 내세운 명분의 타당성이나 삭감 규모의 적정성보다는 절박한 정치쇄신 의지를 표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과)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뜻에서 삭감키로 했다”는 정치적 수사에 공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려면 미국처럼 보좌진 숫자를 늘려주고 활동비를 더 줘야 한다는 반대 논리에 귀가 솔깃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펴기 위해선 의원들의 의식과 행태가 건전하고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계 붕괴를 염려하는 어려운 시기에 세비 20% 인상안을 들고 나왔던 건 사실 몰염치에 가깝다. 그것도 일반 수당에 적용되는 까다로운 규정을 피하기 위해 사용처가 제한되지 않는 ‘입법활동비’ 항목을 골라 인상하려 했다. 여기에 ‘쪽지 예산’을 통해 예산 질서를 무분별하게 흩뜨리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그대로 방치한 채 세비를 합리화하자고 하면 공감하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민주당의 세비 삭감안은 “이런 국회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는 극단적인 정치혐오증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자해(自害)적인 쇄신 의지 표명’으로 이해돼야 한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들고 나온 세비 30% 삭감안은 따라서 존중하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이번 세비 삭감 결의는 석 달 만에 두 번째로 이루어진 결의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대선 과정에서도 세비 30% 삭감안을 의원총회에서 결의한 바 있다. 여야가 서로 공 넘기기를 하면서 이번 삭감안 역시 그렇게 흐지부지되고 마는지를 국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여야가 협상 과정에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세비를 반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그러했듯이 몇몇 의원이 개별적으로 세비 반납 흉내를 내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세비를 찾아가는 꼼수로는 바닥까지 떨어진 정치 불신을 회복할 수 없다. 시대 흐름에 맞게 우리나라 정치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차제에 외부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특위에 맡겨 쇄신안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종 수 한성대 교수 행정학과

‘무노동 무임금’ 적용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의원 세비 30% 감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비 감축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었다. 최근 민주당이 ‘민주당의 신조’ 결의문에서 다시 언급하며 2월 임시국회에서 마무리하자고 새누리당에 제안했다. 그렇다면 의원 세비 감축은 필요하며 가능할까? 세비 감축이 과연 국회의원 스스로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충정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다.

 세비 감축은 여야의 정치개혁 경쟁 과정에서 나온 ‘오발탄’이다. 2012년 우리는 총선과 대선을 치렀다. 여야는 선거 과정에서 ‘새 정치’를 약속했고, 새 정치 실현을 위해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공약했다. 특권 포기 공약은 세비 감축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의원연금 폐지, 겸직 금지, 나아가 의원정수 축소까지 제시됐다. 물론 일부 공약은 현실성도 있고 필요하기도 하다. 의원 겸직 금지와 의원연금의 합리화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의원 세비 감축 공약은 그렇지 않다.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월급을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새 정치 실현을 위한 의원 특권 포기는 의원이 자신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의원이 의원으로서 일을 제대로 한다면 지금 월급도 모자란다 할 수 있다.

 그동안 국회와 의원들이 보여준 행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의원 월급을 줄여도 될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긴 했다. 여야가 국민 눈치를 봐서 세비 삭감 약속을 한 거다. 그러나 진정성이 담긴 약속이라고 보기 어렵다. 진정성이 있다면 지금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또다시 약속해야 했을까. 아직까지 실천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할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닌가. 물론 18대 국회 말 여야가 힘을 합쳐 세비를 인상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서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다른 나라 의회들이 앞장서 자신의 세비를 동결하거나 내린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참에 의원 세비가 적절한 수준인지, 그 구성은 합리적인지 검토할 필요는 있다. 주요국 의원 세비와 비교하면 국회의원의 세비는 일본·미국에 비해 낮지만 독일·프랑스·영국에 비해 약간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국회 차원에서 현행 의원 세비 총액과 구성의 적정성 여부를 점검하고 세비가 어느 정도의 액수가 되어야 적절한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회가 고통 분담과 정치개혁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면 세비 삭감보다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우선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無)노동의 범위다.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무임금 여부와 액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의 직무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지역구에서 민원인을 만나는 것도 의원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의원은 지역구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원은 정당 소속이다. 의원이 정당 내에서 당직을 맡아 활동하는 것도 국민 대표로서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렇게 보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국회 회기 중 국회 공전’ 등으로 국회의원 무노동의 범위를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일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일 제대로 하는 국회의원에게는 충분한 월급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박 명 호 동국대 교수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