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23. 세계의 컴퓨터 부품공장-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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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취안디이(安全第一), 핀즈디이(品質第一)'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둥관(東莞)의 대만계 회사인 요케이광학 공장엔 20살안팎 여성근로자들의 낭랑한 구호가 울려퍼진다.

흰색 작업복을 입고 공장라인에 도열하듯 앉아 작업에 열중하는 '언니부대'의 모습은 60~7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들이 30년 세월을 넘어 둥관에 옮겨온 듯 하다. 여느 인근 공장도 비슷한 풍경이다.

둥관의 여성근로자는 모두 3백여만명. 둥관시민보다 2배나 많다. 인근 각지에서 둥관 공장으로 몰려든 이 '언니부대'들이 바로 '세계의 PC공장' 둥관의 신화를 만들어 낸 또다른 주역이다.

요케이광학의 쳉웬타오(鄭文濤)사장은 "90년대초 대만의 생산시설을 모두 둥관으로 옮겼다"며 "둥관에선 한달에 5백~1천위안(8만~16만원)이면 젊고 우수한 여성인력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흔히 첨단산업이라고 하지만 IT산업중 특히 PC부품 산업은 사람손이 필요한 조립공정이 많아 노동집약적인 성격이 강하다.

鄭사장은 "부품조립이 대부분인 대만의 IT산업은 인건비가 비싼 대만에서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며 "90년대초 대만기업의 둥관러시는 양질의 저임노동력을 찾는 PC부품산업의 특성상 필연적인 수순"이라고 덧붙였다.

1991년 대만이 5천만달러내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대륙투자를 공식허용하자 대만 PC업체의 중국행이 불붙었다. 대만의 잘나가는 기업이던 델타전자가 당장 PC전원공급장치(SMPS) 생산기지를 둥관으로 옮겨왔다.

홍콩기업으로 국적을 위장하고 선전(深□)등 인근에 이미 진출해 있던 대만계 기업들도 대거 둥관으로 이사했다. 크고 작은 대만 부품업체들이 몰려들면서 막상 대만에선 PC산업의 공동화가 우려될 정도였다.

현재 둥관에 있는 2천8백여개 외국계 PC관련기업 중 1천7백여곳이 대만기업이다. 10개중 6개 꼴이다.

한 대만계 PC 마더보드 업체 관계자는 "대만서는 개당 6달러지만 여기선 2달러로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다"며 "게다가 둥관은 홍콩과 가까워 홍콩시장 진출에도 유리하고 홍콩 금융기관들을 이용할 수 있는 등 지리적 이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렇게 몰려든 대만 기업들은 둥관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둥관은 마우스.키보드 등 세계의 PC부품 10개중 4개를 만들어 낸다. 80년대 세계 PC부품 생산의 20%가량을 차지했던 대만의 위치를 뺏은 것은 물론, 한술 더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PC공장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런데 대만기업들은 왜 하필 둥관을 택했을까? 중국에 젊은 여성인력이 풍부한 곳은 둥관말고도 부지기수다.

"둥관지역안에 있는 기업끼리 수출용 부품을 사고팔 때 우리 시에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중국내 다른 지역은 이런 거래에도 별도의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물린다. 외국기업이 어느 곳을 택할 지는 뻔한 것 아닌가."

둥관시 대외무역경제합작국 양샤오창(楊曉常)부국장은 시의 이런 정책적 배려를 해답으로 꼽았다. 중국은 가공후 곧바로 수출하는 수입부품이 아닌 모든 수입부품의 중국내 거래에 다시 추가로 관세와 부가세를 물린다. 대신 지방정부의 재량에 따라 이런 세금을 면제해주는 '결전(結轉)'제도도 도입했다.

관세와 부가세가 워낙 큰 수입원인만큼 대부분 지방정부는 결전제를 채택하지 않지만 둥관은 예외란 것이다. 주어진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외국기업을 유인하는 것, 둥관이 중국 IT산업의 '라오다(老大.큰 형님)'로 불리는 또다른 비결인 셈이다.

PC부품으로 일단 궤도에 오른 둥관은 요즘 최첨단 산업기지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 노트북.반도체 등 진짜 첨단 IT산업은 고급인력이 몰려있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주변으로만 달려가고, 둥관엔 여전히 PC 부품.조립산업만 모여든다.

둥관시는 곧 20억위안(3천2백억원)을 들여 연구개발 능력이 있는 대학을 유치할 계획이다. 첨단산업기지로 발돋움 하려면 무엇보다 풍부한 고급 두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IT엑스포'를 매년 열기로 정례화했다.

세계 IT업계에 이름을 알리려는 노력이다. 세계제일의 부품공장으로 만족하는데 그쳐서는 그 자리조차 언젠가는 남에게 빼앗기고 만다는 이치를 둥관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楊부국장은 "기업하는 것도 학문하는 이치와 같다"며 중국 고전의 한구절을 소개했다.

"학문(기업)은 배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곧바로 퇴보한다(學問如逆水行之, 不進卽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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