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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맞았습니다" 코믹연기 정준호

중앙일보

입력

"이젠 코미디 배우로써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잘 생긴 배우 정준호(31)의 행보가 요즘 심상치않다.

지난 95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한 뒤 드라마 '안녕 내사랑' '왕초'등에서 얼굴을 알렸지만 사실 그는 영화 쪽에서 썩 `잘 나가는' 배우는 아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아나키스트'와 '싸이렌'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한 탓이다.

게다가 선한 눈매와 선굵은 그의 외모와 달리 정준호에게는 항상 야비한 성격의 악역만 맡겨져 관객과 거리감이 있었던 게 사실. 최근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에서도 5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열연했지만 동지들을 배신하는 배역 탓에 지금까지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듯 보였다.

그러던 그가 `학원 코믹 조폭 영화' '두사부일체'(14일 개봉)에서 확 달라졌다.

어깨에 힘부터 뺐고, 스타일을 한없이 구긴다.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리다 급기야 한 사립 고교로 편입하는 중졸의 조폭 중간 보스 `계두식'이 그가 맡은 배역. 졸업장을 따기 위해 신분을 숨긴 채 급우들의 갖은 괴롭힘을 묵묵히 견뎌내지만 담임 선생에게 덤비는 급우를 주먹으로 응징하면서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두목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두사부일체)'라는 그의 지론에 따르면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여자 `짝꿍'이 교사에게 당하는 것을 본 뒤 사립학교 재단의 횡포에 반기를 들면서 학교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처음 촬영 일주일 동안은 어린 배우들과 세대 차이도 크게 나고, 저 역시 코믹연기가 익숙지않아 정말 썰렁했어요. 특히 많이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면서 고생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저를 이웃집 오빠처럼 편안하게 대할 수 있도록 `나를 망가뜨리자'고 결심했지요. 관객과 저와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었다고나 할까요" 그의 각오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이 메일 주소는 있지?" "누굴 바보로 아십니까? 서울시 중구 명동..." "`다음 카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음, 우리 구역인가?" 이 메일 주소를 묻는 말에 천연덕스럽게 집주소를 대고 인터넷 같은 `첨단 용어'를 입에 올리는 부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가수 김흥국 흉내를 내며 `아싸~ 호랑나비'를 온몸으로 열창할 때는 정준호가 코믹 배우로서도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그가 영화에서처럼 늦깎이 향학열에 불탔다는 것. 정준호는 얼마 전 수능시험을 치뤘고, 경희대 등에 합격 통지서를 받은 상태다.

"그동안 줄곧 연기 생활만 해 왔기 때문에 이젠 젊은 친구들과 함께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이상 나이들기 전에 평소 하고 싶었던 연기와 영화 연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맘 먹었지요." 임창재 감독의 공포 영화 '하얀 방'의 형사역으로 일찌감치 캐스팅 돼 차기작을 확정한 정준호는 모처럼 찾아온 인생의 전성기를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각오다.

"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인생을 좀 더 알게되는 마흔 살 이후에는 멜로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구요." (서울=연합) 조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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