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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여, 잘살아보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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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강태
BC카드 사장

중소자영업자 600만 명. 우리나라 농업인구 300만 명의 두 배 규모다. 요즘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국민 세금 1조원 이상이 투입되고, 그 규모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자영업자가 살 만해졌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1조원을 600만 명이 나눠 가진다고 해도 고작 17만원꼴이다. 예산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 규제가 입법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자영업 장사가 갑자기 잘될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필자는 34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유통 분야에서만 30여 년 일했다. 또 신용카드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국내 220만 가맹점의 창업-폐업 실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약자 보호를 위한 시장 합리화 정책이 필요하지만 현재와 같은 정부 주도의 지원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처방약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본질에서 답을 찾아보자. 어떻게 해야 장사로 잘살 수 있을까. 가장 밑바닥의 경쟁력은 바로 상인의 도(道)라고 본다. 전통적인 산업 구분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정통 경제관료로 칭할 수 있는 사는 경제 개발 초기는 물론 이후의 발전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농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통해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기반을 갖췄다. 공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대기업이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성공의 바탕엔 모두 의식 개혁이 자리 잡고 있다. 사의 충성심, 농의 애향심, 공의 경쟁심이다.

 이제 상이 남았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개발을 이룬 데엔 불같은 열정과 강철 같은 집념, 눈물겨운 희생이 큰 역할을 했다. 상도 이제 철저히 본연의 도를 찾아야 한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자식에게도 상인의 길을 걷도록 ‘강추’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상이 가맹점 수수료나 골목상권 살리기에 의존해서 생존 전략을 짜면 안 된다. 뼛속까지 상인이 돼야, ‘장사꾼’이 돼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도 자금 지원이나 대기업 진출 규제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상인의 의식 개혁을 전담하는 상인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가나안 농군학교 같은 상인학교 말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상인이다’라는 자부심이 없이는 어떤 지원도 낭비가 될 소지가 크다. 자영업자 스스로 사농공상이 아니라 상공농사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인식이 바뀌어 절실해지면 제대로 장사하는 방법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손님이 왕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충실해야 한다. 고객이 누군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 고객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아서 맞춰야 한다. 손님이 나를 좋아하고 믿어야 내 물건과 서비스를 살 것이다. 성공한 자영업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차별화된 맛과 서비스, 입소문 마케팅, 스토리텔링, 고객 분석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장사에도 열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엔 아직도 천편일률적인 메뉴, 점심 시간이니 가급적 주문을 통일해 달라고 강요하는 종업원, 고객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 계산원이 눈에 자주 띈다. 절절해야 열정이 나오고, 열정에서 창의가 나온다. 장사해서 밥은 먹고산다는 식이라면 옆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면 금방 거덜 난다.

 그 다음은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이다. 최근의 자영업 정책은 남의 것을 뺏어주는 측면이 강하다. 중대형 유통사의 골목상권 진입 금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 제도 개선,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우대 등이다. 이런 방식으론 이해 당사자 간 대립이 불가피하고, 자발적인 상생 체계가 가동되기 힘들다. 밀어붙이기보다는 시장 원리가 작동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성공하는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일에 대한 진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일에 대한 보다 과학적 인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시의적절한 지원이 더해진다면 자영업 의 성공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러 어려움에 빠져 있는 자영업자 모두 상인의 도에 기반을 둔 ‘제2의 상업 새마을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이 강 태 BC카드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