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로 교도소 간 男, 1만2000원 월급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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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도소에 수감 중인 서모씨가 기부 의사를 담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앞으로 보낸 편지.

지난달 23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발신지는 경북 안동교도소. 가로 20㎝, 세로 130㎝의 한지에 붓펜으로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편지에는 “교도소에서 목공 일을 하고 받는 월급 1만2000원을 재단에 기부하고 싶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글쓴이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0년째 복역 중인 서모씨. 그는 교도소에서 직접 그린 서화(書畵)들도 함께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2002년 살인죄로 수감된 서씨는 처음엔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를 생각하면서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록 아들에겐 아빠가 죽은 걸로 돼 있지만 서씨는 언젠가 다시 만날 아들에게 덜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었다. 지난 10년 동안 서씨는 매일같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열심히 목수 일을 배웠다. 어릴 적 그림을 좋아했던 기억을 더듬어 틈틈이 서화도 그렸다.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깨우친 서씨는 서화 대회에 출전해 20여 차례 상도 받았다.

서씨는 “내 아이에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지만 다른 아이들에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며 “비슷한 처지의 다른 동료 3명도 함께 기부를 하기로 했다”고 적었다.

 지난해 6월에는 경기도 화성교도소에서 9년째 복역 중인 고모씨가 매달 받는 작업비 1만2000원을 어린이재단에 후원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고씨는 편지에서 “어린이재단의 소식지 ‘사과나무’를 보며 나보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나눔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고 깨끗하지 못한 손길이라 망설였지만 아픈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년간 이들처럼 교도소에서 재단에 후원 의사를 밝힌 수감자는 총 6명. 2010년 2명, 2011년 3명 등 매년 늘고 있다.

 어린이재단 이제훈 회장은 “어려운 때일수록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사는 의식을 가져야 사회가 건강해진다”며 “나눔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키우는 이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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