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형 토빈세’ 검토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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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미스터 원’으로 불린다. 시장 개입을 자주 해 ‘미스터 엔’이란 별명을 얻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재무성 재무관에 빗댄 말이다. 그런 최 관리관이 엊그제 ‘한국형 토빈세’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금융연구원 세미나에서 “단기 해외 투기자본 규제를 위해 가능한 한 빨리 한국형 금융거래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환정책 당국자가 공개석상에서 외환·금융거래세 도입을 주장한 것은 처음이다. 물론 표현은 신중했다. “토빈세란 표현은 가급적 삼가겠다”는 말도 했다. 토빈세는 1970년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토빈이 주장했다. ‘모든 나라가 모든 외환 거래에 똑같은 세금을 물리면 단기 투기성 자금을 규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동안 정부는 토빈세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투기자금 억제 효과보다 국내 자본시장이 쪼그라드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이유였다. 한국만 외환을 규제했다간 국제 시장에서 ‘왕따’를 당할 것이란 우려도 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사정이 바뀌었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우선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일본·유럽연합(EU) 중앙은행이 푼 돈만 약 5조 달러에 달한다. 아직은 비교적 잠잠하지만 이 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웬만한 나라 자본시장 하나쯤 거덜 내는 건 일도 아니다. 이미 세계 각국이 이런 위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 초 독일·프랑스를 비롯한 EU 11개국이 채권·주식 등에 금융거래세 도입을 결의한 데는 이런 위기의식도 한몫했다. EU뿐만이 아니다. 브라질은 진작 토빈세를 도입했다. 2010년부터는 외국인의 채권투자에 6%의 거래세를 물리고 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외국 투기자금이 몰려드는 속도는 줄었지만 헤알화 가치 인하 효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정부는 EU와 브라질 등의 사례를 참조해 ‘한국형 토빈세’ 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구상은 주로 들어오는 돈에 대한 규제 위주다. 한 걸음 더 나가 돈이 나갈 때의 충격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외환 트라우마’는 주로 외국 돈이 빠져나갈 때 생겼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가 좋은 예다.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커 한국은행이 매년 큰 유지비용을 들이면서도 외환보유액을 3200억 달러 이상 쌓아놓고 있는 것 아닌가. 외국 돈이 바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중앙은행증권 투자에 대해 6개월간의 최소 보유기간을 둔 인도네시아의 예를 참고할 만하다.

 특히 시장이 위축되지 않도록 치밀한 설계도 필요하다. 어제 ‘토빈세 도입’ 소식이 전해지자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시장은 벌써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1984년 주식·채권에 대해 과세했던 스웨덴은 심각한 금융불안과 주가폭락으로 91년 모든 과세를 철회해야 했다. 그런 부작용까지 감안한 세밀한 조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