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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근|향토제 재연의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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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향토제가 일정이후 급격한 쇠퇴를 가져와 강릉단오제도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탈춤은 70, 80대의 고 노들이 아니면 목격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중단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현지 관민의 향토민속예술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으로 이번 단오제에는 탈춤을 재연, 향토 고유의 민속예술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니 그 동기는 치사할만하고 그 노고에 대하여 사한다.
근자 기계문명의 영향을 받아 전승 향토제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이때에 민족 고유의 예술을 되찾는 일은 문화유산의 계승에 크게 공헌할 것이며 문화재의 발굴 보존에 유익한 것으로 이 같은 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화유산계승에 공헌>
지방관민의 애향심에서 우러나는 긍지로써 참여하고 중앙에서도 종래의 무관심을 버리고 보존 육성의 대책이 마련되면 고유문화재의 발굴은 한층 더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강릉 단오제는 오랜 전통을 가진 향토제로 여기에는 온 지방민이 참여한다.
이는 「단오굿」 또는 「단양제」라 이르거니와 대관령 서낭신을 모셔다 놓고 국태민안과 제액초복, 그리고 풍양과 풍어를 빌고 있다.
원래는 음력 4월14일에 대관령 산신을 모시기 위하여 호방을 앞세우고 관노와 무격과 일반 치성인의 행렬이 시내를 출발하게 된다.
도중에 야숙 1박하고 대관령에 이르는 것은 15일 아침. 신간과 팻대(괘간·화간)를 앞세운 행렬은 길고 긴 대관령 오솔길을 누볐다고 하는데 더 우 기 구산 근처에 이르러서는 일몰 때가 되므로, 마중 나간 촌민들의 횃불이 가담되어 한층 장관이었다고 전한다.
모셔온 서낭신은 그 부인인 대관령 국사여성황을 모신당에 들어 굿하고 쉬게된다. 이렇게 해서 오랜 전통에 따라 관민이 합치하여 서제의 막을 올리는 것이다. 본격적인 단오제는 5월1일부터 시작하여 단오 날에 결정을 이루고 6일에 소제를 지낸 뒤 서낭을 대관령에 보내는 바 이로써 20여 일에 걸친 제사가 끝나는 셈이다.
강릉 단오제의 겨우 그 특징은 첫째, 제사의 진행이 관민의 완전한 협조로 이루어지며 옛날엔 관급에 의해 제비가 마련됐고, 지금도 제관을 시장·군수·경찰서장이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 향토 제는 관민의 융화에 좋은 계기가 된다.

<관·민 융화의 계기로>
둘째, 단오제가 험준한 대관령을 지키는 산신과 서낭신을 제사하고, 특히 인격신으로서의 서낭신을 중심으로 행하는 제이기 때문에 서낭신의 출생·행적이 선명하게 전설로 남아있을뿐더러 강신하는 도중 부인사당에 들른다든지 그 부인이 생장했다는 집터의 거주자가 치성 드리는등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휴먼」하게 얽혀있는 점이다. 곧 대관령 서낭신은 향토전설과 연결되어 매우 친근감을 주는 까닭에 지방민의 신앙을 더욱 두텁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세째, 단오제에는 보신의 하나로 탈춤이 있는 점이다. 「장자마리」2, 「양반」1, 「소매각시」2, 「시시딱딱이」2, 합해서 6사람으로 이뤄진 묵극이다. 무격의 반주에 맞춰 진행되는 이 탈춤에서, 장자마리 외에는 모두 가면을 쓰며 딴탈춤과 마찬가지로 양반과 소매각시와의 사랑과 시시딱딱이의 심술로 엮어졌다. 다만 이 탈춤은 관노가 맡아서 한 탓인지 양반에 대한 심한 풍자가 없다. <민속학자·서라벌예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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