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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환상유희 '멀홀랜드 드라이브'

중앙일보

입력

미국 감독 데이비드 린치(55) 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오는 30일) 와 '스트레이트 스토리'(다음달 1일) 가 하루 차이를 두고 극장에 걸린다.

데뷔작 '이레이저헤드'를 비롯해 '광란의 사랑''트윈픽스'등 때문에 그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일종의 컬트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외견상 견고해 보이는 미국 중산층의 황폐한 내부, 겉으론 멀쩡한 인간들의 내면에 도사린 포악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에 개봉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도 그의 이런 고집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형제간의 화해라는 소박한 주제를, 별다른 기교없이 담담하면서도 다소 전통적인 방식으로 보여줘 대조적이다.

*** '멀홀랜드 드라이브'


비논리적이면서 추상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이런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지성이 아닌 직감으로 받아들여달라"는 린치 감독의 주문이 언뜻 무책임하게 느껴지지만 절묘한 그의 감성에 근접할 수만 있다면 즐거운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황당함에 콧방귀를 뀌고 뒤로 물러 앉거나 아니면 최면에 걸린 듯한 오묘함에 빠져드는 극단적인 반응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도 계속된다.

로스앤젤레스 외곽에서 교통 사고를 당해 갑자기 기억을 잃은 리타(로라 엘레나 해링) 가 방황하다 어느 빈집으로 숨어든다. 스크린 스타를 꿈꾸는 베티(나오미 와츠) 는 자신의 집에 숨어든 리타를 발견하고 그를 도와주려 한다.

리타가 카페 종업원의 명찰에서 다이안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놀라자 베티는 다이안이란 이름을 단서로 리타의 실체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중반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리타가 잘 나가는 여배우 카밀라로 변신하고 베티가 카밀라의 동성 연인 다이안으로 둔갑하며 환상의 블랙홀로 빠져든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없애고 끝없이 순환하는 듯한 구조를 취한 이 영화는 교묘하게 얽힌 긴박한 사건들이 점차 파멸로 향해가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자극적인 색상이나 기묘한 분장, 그리고 기이한 이야기 전개에선 '블루 벨벳'과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보여준 감독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하고 영화 만들기 법칙의 파괴도 여전하다.

특히 한 사람을 죽이려다 실수가 겹치면서 세 사람을 죽이게 되는 한 킬러의 생뚱한 에피소드나 환상공간의 한 극장에서 스페인 여인이 부르는 곡 '욜란도'등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린치 감독은 이 영화로 올해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안았다.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뭐가 뭔지 헷갈리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듯. 그러니 애써 이야기를 맞추려 들지 말고 장면의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린치가 그려놓은 신천지에 닿을 수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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