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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르포] 사랑의 '휘몰이 장단'1000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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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온누리국악예술단 연습실에서 단원들이 구상본 단장(위쪽 중앙)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조문규 기자

▶ 결손가정 아이들과 국악단을 꾸린 구상본씨. 아이들을 국악으로 홀로서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27일 오후 8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엔 한동안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1080개의 객석을 가득 메운 국내외 관객은 "대단해!" "원더풀"을 되풀이했다. 경북 청도군의 온누리국악예술단이 창단 10주년을 맞아 마련한 '천년의 소리' 한마당이었다. 북.장구.다듬이 등 타악기는 물론 피리.판소리.가야금 공연까지 펼치는 이 국악단은 10년 만에 1000회 이상 국내외 공연을 할 만큼 이름을 얻었다. 단원 22명은 국악인 집안 출신도 아니고 특별히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특별하다면 단원 모두가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고 사는 가족 공동체란 점이다. 또 대부분 부모가 이혼하는 등의 아픔을 간직한 결손가정 출신이다. 한 아이는 심지어 새어머니의 구타를 피하기 위해 한식구가 됐다.

단장인 구상본(具尙本.47)씨는 초등학교 2년부터 대학 3년까지로 구성된 이 대가족의 '아버지'다. 아이들은 성은 다르지만 구씨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구씨는 "어떤 사정으로 왔든 자식이 된 이상 내가 공부와 생계를 책임진다"고 말했다.

온누리 가족의 만남은 구씨 부부의 재혼으로 시작됐다. 구씨는 대구에서 사업을 하다 이혼했고, 지금의 부인은 전 남편과 사별했다. 구씨 부부는 93년 청도로 옮겨가 음식점을 열고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다.

시골에 수영장이 들어서자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몇몇 아이는 저녁 때가 돼도 떠날 줄을 몰랐다. 이혼 등으로 엄마.아빠 한쪽이 없는 결손가정 아이들이었다. 구씨는 자기 아이들과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 7명에게 놀이 삼아 북과 꽹과리를 쥐여주었다. 구씨는 "아이들이 타악기를 두드리면서 아픔을 잊기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95년 본격적으로 국악단을 구성한 구씨는 소문을 듣고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자 청도군 화양읍의 한적한 시골에 널찍한 폐교를 얻었다. 구씨는 이곳을 숙소 겸 연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에서 본격 국악 수업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창단 2년 뒤인 97년 남원춘향제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다. 교실을 두어 칸 튼 연습실에선 창단 멤버로 출발해 올해 경북대 국악과에 입학한 대학생 언니.오빠 등 넷이 지도를 맡는다. 국악으로 장차 아이들을 홀로 서게 한다는 구씨의 목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구씨는 집에선 엄한 아버지다. 구씨가 호통 친 뒤 아이들을 다독이고 집안 일을 꾸리는 것은 부인의 몫이다. 한 아이는 "아버지는 엄해 보이지만 그래도 숙제 하나까지 챙길 만큼 자상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얼굴은 이제 어디에도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웃음과 자신감뿐이다.

구씨 부부의 헌신과 국악단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2003년 향토 기업인이 중심이 돼 장학회가 조직되고 일본엔 100여 명이 참여한 후원회가 만들어졌다.

청도=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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