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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축구대표, 주전 꿰차기 서바이벌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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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驥)는 하루에 1천리를 가볍게 달린다는 중국 전설 상의 준마다. 대표적인 '기'는 한무제 때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한혈마(汗血馬)다. 달릴 때 붉은 피가 섞인 땀을 흘린다는 말(馬)이다. 한혈마는 에너지와 패기의 상징이다.

15일 울산에서 만난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선수 하나하나가 모두 한혈마였다. 우선 눈빛부터 달랐다. 누구든 앞에 막아서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요절을 낼 것 같은 기세였다. 이곳저곳을 치닫는 동안 입과 코에서 쇳소리가 났지만 '말갈기' 만은 여전히 꼿꼿했다.

새해 벽두 서귀포에서 소집훈련을 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적지 않게 침울한 분위기였다. 우선 안양 LG가 소속 선수 7명을 대표팀에 보내지 않은 것이 짐이 됐다.

안양은 "축구협회가 규정을 무시한 채 너무 이른 시기에 대표팀을 소집했다"며 선수 파견을 거부했다. 게다가 폭설까지 내려 첫 훈련으로 잡힌 한라산 등정마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분위기는 말끔하게 가셨다. 안양 선수들도 9일 울산에서 대표팀에 합류했다.

사기가 충천해 있다. 이런 기운은 지난 15일 울산 강동구장에서 열린 연세대.포항 스틸러스와의 연이은 연습경기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날 선수들은 실전처럼 온몸을 던졌다. 수비의 핵 박용호(22.안양)가 코뼈를 다치고, 최종 스위퍼인 조병국(22.수원)이 팔이 빠지고, 공격수 조재진(22.상무)이 발목을 다칠 정도였다. 그만큼 격렬했다.

아직 전술 훈련에 들어가지도 않은 '훈련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1승1무(연세대전 2-2, 포항전 1-0)라는 전적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성적이었다.

대표팀이 이른 시일 내에 이렇게 변모한 비결은 뭘까.

우선 선수들 간의 치열한 주전 경쟁이다. 대표 선수 27명 가운데 최종 엔트리 18명에 포함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베스트11'에 끼이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천수(22.울산).박지성(22.PSV 아인트호벤).최태욱(22.안양) 등 사실상 '베스트11'을 예약해 놓은 스타급 선수들을 제외한다면 기용 폭은 더 좁다.

훈련 이외의 시간에는 철저하게 자유를 주고, 선수들을 마음 편하게 지내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김호곤 감독 등 코칭스태프의 지휘 스타일도 한몫 했다.

그렇다고 대표팀에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전급과 비주전급 선수들 간에 실력차가 큰 편이기 때문이다. 김호곤 감독은 "비주전급 선수들의 실력을 끌어올려 '선수층이 두터운 대표팀'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대표팀은 17일 두차례 연습경기를 끝으로 울산 훈련을 마무리했다. 오전 홍익대와의 경기에서는 김완수(21.중앙대.두골)와 한정화(21.안양)의 골로 3-0 완승을 거뒀고, 실업 최강 현대미포조선과 맞붙은 오후 경기에서는 1-2로 졌다.

대표팀은 18일 상경, 20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첫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다.

울산=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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