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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사도 판결문 쓰듯 … 입 무거운 ‘법대로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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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에서 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사무실로 가고 있다. [김형수 기자]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인수위원장에 임명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찾아 읽는 것이었다. 김 후보자는 한마디로 ‘법치주의자’다. “난 법밖에 모른다” “내가 법, 법 하지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해 12월 27일 인수위원장에 임명된 뒤 첫마디도 ‘룰 오브 로(Rule of law·법에 의한 지배)’였다.

 당시 기자들이 박근혜 당선인이 자신을 인수위원장으로 발탁한 배경을 묻자 그는 “그 양반(박 당선인) 내심을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는데, 인수위 시작부터 ‘룰 오브 로’, 법에 의한 지배에 중점을 두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런 말도 했다.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나한테는 재미있는 이야기 안 나와. 나는 결혼식 주례하는데도 A4 용지 3장 정도 준비해 와서 읽어요. 3~5분 정도인데, 주례사 한다고 얘기를 하다 보면 또 한마디 하고, 길어지고 그러니. 제가 판결문 쓰듯 해서 딱딱할 겁니다.”

 그런 그의 법률관은 이렇다.

 “옛날에는 ‘법을 지키자’ 이러면 권력이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법치가 아닌) 덕치, 유교사상, 일제 36년, 해방 이후 정부에 의해 법이 악용되는 역사를 거치면서 법을 무시하고 저항하는 사람이 영웅시되는 풍조가 있다. 그런데 이제는 법에 의한 지배가 안 되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세계에 공통된 룰이 있어야 한다.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와서 회사 설립하고 투자하려면 우리나라 법을 알아야 한다. 법은 나를 귀찮게 하는 게 아니다. 법을 지키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이런 일련의 발언에서 읽혀지는 ‘김용준 스타일’은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입이 무겁다는 점이다. 박 당선인이 법조계 인사를 첫 총리로 발탁할 것이란 예측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대체적으로 법조인들이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언행이 신중한 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김용준 스타일이 박 당선인의 코드에 가장 잘 맞는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지난해 10월 11일 박 당선인은 중앙선대위원장 인선 발표 때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고, 그분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기 위해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저희 당이 지향하는 법치의 원칙과 헌법 가치를 잘 구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여러 법조인 중에서도 박 당선인이 김 후보자를 대통령 선거대책위원장→인수위원장→총리 후보자로 계속 중용하는 것은 김 후보자가 각 단계마다 자기 목소리를 키우지 않고 박 당선인의 방침에 잘 부응해 왔기 때문이라고 박 당선인 측은 설명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24일 “김 후보자는 당초 예상보다 업무 파악과 조율 능력이 뛰어났다. 인수위가 출범이 늦었지만 잡음 없이 돌아가는 것엔 김 후보자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인수위원장을 맡으면서 “법원 합의체의 경우 재판장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생래적으로 (합의 도출이) 훈련돼 있다”며 “인수위 업무 수행에서도 인수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한가지 결론이 나도록 유도하겠다”고 했었다.

 박 당선인과 김 후보자의 인연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선대위원장에 영입됐을 때가 두 사람 네트워크의 시작이다.

 당시 박 당선인에게 김 후보자를 천거한 사람은 뚜렷이 알려져 있지 않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황우여 당 대표가 소개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김 후보자와 황 대표는 1982~84년 서울고법에서 함께 근무했다. 연배는 김 후보자가 9년 위지만 김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을 지냈을 때도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황 대표는 “내가 김 후보자를 천거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다만 김 후보자에 대해 “예전부터 잘 아는 분으로 아주 인품이 훌륭해 행정부를 잘 이끄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당선인의 한 측근은 “당선인이 꾸준히 업데이트시켜 온 인사 파일이 방대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김 후보자를 눈여겨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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