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버리지 못한 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본선 16강전> ○·박정환 9단 ●·중원징 6단

제8보(92~104)=고수들의 바둑이란 단 ‘한 집’ 때문에 천하대란이 일어나는 거지요. 바둑 ‘10결’ 중엔 기자쟁선(棄子爭先)·사소취대(捨小取大)·봉위수기(逢危須棄) 등 버리라는 교훈이 3개나 됩니다. 바둑을 두려면 모름지기 버릴 기(棄)와 버릴 사(捨) 두 글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한 집을 하늘처럼 여기면서 10집, 20집도 아낌없이 버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잘 추격해 온 흑의 중원징 6단도 바로 이 ‘버리기’의 함정에 걸려듭니다. 백이 92로 살려낸 것은 이 돌보다는 94, 96을 자연스럽게 얻어내 흑 6점을 잡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한데 4점과 6점이 무슨 그리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흑은 이쯤 해서 ‘참고도 1’처럼 아낌없이 버려야 했습니다. 백이 꼭 이대로 따라 주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버리는 쪽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중원징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99로 끌고 나옵니다. 3년 우려먹은 쇠뼈다귀를 다시 살려낸 저의가 뭔지 몰라 구경하는 프로들은 잠시 당황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좀 더 이용하고 버릴 심산이었는지 모르지만 102가 놓이니 중원징은 갑자기 뒤가 불안해졌습니다.

‘참고도 2’ 흑1로 달아나야 정상이겠지만 어느덧 백2가 너무 큰 수가 되었습니다. 만약 백2가 선수로 듣는다면 중앙을 다 살아봐야 손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103에 두자 이번엔 104 급소 일격이 너무도 뼈아프군요. 위험합니다. 명백한 작전 실패입니다.

▶ [바둑] 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