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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모스의 아름다운 컴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0년대의 아이콘' 케이트 모스. 그러나 그녀는 세기를 뛰어넘은 2000년대에도 여전히 가장 빛나는 모델의 별이다. 그녀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열네 살 소녀에서 스물여덟의 여인으로 성장한 케이트의 아름다움 컴백!

1988년, JFK 공항의 한켠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열네 살 소녀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 혹시 모델이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좋아요! 그런데 정말인가요?”


이것이 케이트 모스 스토리의 시작이다. 작은 키에 볼품 없이 마른 몸, 게다가 덜 자란 티가 확연한 미숙하고 불안정한 영국 소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믿어지지 않는 행운.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캘빈 클라인을 단숨에 사로잡은 그녀는 예의 그 불완전한 몸매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섹시함’이란 단어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게 했다. 하늘을 찌를 듯 큰 키에 완벽한 몸매를 소유한 화려한 슈퍼 모델의 전성기는 케이트의 등장과 함께 마감되었고, 그녀의 연약하고도 반항적인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이른바 ‘케이트 모스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였다. 급격하게 변화한 미의 기준 때문에 사회학적 논란의 대상이 된 모델은 60년대의 트위기 이후 30년 만에 그녀가 처음일 것이다.


케이트는 또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한 유명인과의 불 같은 사랑으로 타블로이드 지면을 자주 장식하는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하다. 그녀의 첫 연인은 옵세션 향수 광고를 찍은 사진가 마리오 소렌티. 연인의 카메라 앞에서 전라로 포즈를 취했다는 사실만으로 대단한 뉴스가 되었다.

바람둥이 조니 뎁 역시 케이트와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지젤의 연인으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 빌리 제인, 댄 맥밀런(출판 재벌의 상속자), 제시 우드(‘롤링 스톤즈’ 멤버의 아들), 안토니오 랭돈(영국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 등 많은 인물들과의 염문설을 뿌린 그녀는 보장받지 못한 사생활과 연인과의 헤어짐 등 심리적인 부담으로 흡연, 음주, 마약, 화재 사건 등 부작용을 자주 일으키며 명예롭지 못한 소문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장 과정을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아야 했고, 저널리스트들과 끊임없는 심리전을 벌여야 했으며, 실망스럽지 않은 패션 감각을 보여주어야 했고, 모든 사생활을 대중에게 노출시키며 살아야 했던 그녀는 어느 정도는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이 낳은 ‘망쳐진 아이(spoiled child)’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반짝 스타 이상의 저력을 가지고 있는 영리한 여자이기도 해서, 변덕스런 대중의 취향에 의해 쉽게 잊혀지고 희생당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생명력을 길게 하는 이유는 케이트가 뛰어난 모델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독창적인 스타일링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한때 재미 삼아 잡지의 스타일리스트가 되기도 했던 케이트는 저급함과 고급스러움이 공존하는 독특한 취향을 지닌 패션 천재다.

오늘날 마크 제이콥스나 니콜라스 게스퀴에르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주저 없이 케이트를 꼽고 있을 만큼, 그녀는 많은 디자이너에게 아직도 선망의 모델이다.

열네 살의 반항적인 눈빛의 소녀는 2000년대에 이르러 풍부한 표정과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20대 후반의 여자로 성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 모든 망가진 행동들과 결별하고 완벽하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때론 그 모든 말썽 많은 스캔들이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악의 꽃’이 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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