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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6000억 적자 vs 2조7000억원 흑자…누구 말이 맞나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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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손해 보고 팔아요.”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무언가를 살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입니다. 거짓말인지 알면서 왠지 싸게 산 거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죠.

장사하는 사람은 결코 얼마나 남기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이익이 얼마인지 밝히면 좋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좀 많이 남기면 고객은 그만큼 비싸다고 느낄 게 뻔합니다.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빌미가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실무를 맡고 있는 용산역세권개발(AMC)이 용산개발로 남는 수익이 얼마인지 공개한 건 이례적입니다.

AMC에 따르면 사업비 30조원 규모의 용산개발사업은 27000억원의 흑자 사업입니다.

보통 건설사들은 상업지구나 업무지구를 분양할 때 분양가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계약 규모나 조건별로 금액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입주를 원하는 기업과 개별 협상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AMC 3.3㎡당 분양가도 업무지구, 상업지구 등 건물별로 세부 항목까지 모두 공개했습니다.

심지어 상업시설 매각 협상자 리스트도 내놓았습니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기업들과 꽤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하고 있네요. 이들 중에는 지하 쇼핑몰 등을 통매입하고 싶어 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사실 개발업자가 협상과정 중인 대상자 리스트를 공개하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공개될 경우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고 협상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다된 밥에 재 뿌릴 수 있습니다.

‘순수익 27000억원’ 공개한 AMC

AMC는 도대체 왜 이런 무지한 행동을 했을까요? AMC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위해 모인 30개 출자사 모임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이하 드림허브)의 실무를 담당하는 회사입니다. 드림허브 출자사, 특히 1대주주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을 설득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보입니다.

드림허브는 파산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코레일과 다른 출자사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사업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파산 직전입니다. 사업부지에서 진행하던 토지 공사는 공사비를 내지 않아 중단됐고, 설계비 등도 지급하지 못해 사실상 사업은 멈췄습니다.

드림허브는 현재 자금이 10억원도 남지 않았습니다. 은행 이자 마감일인 오는 312일 이전에 140여억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디폴트(지불 불이행) 선언이 불가피합니다.

현재로선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한 자금 마련이 가장 현실적이지만 출자사별 내부 의견수렴, 드림허브 이사회 개최, CB발행 절차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남은 시일은 10~20일밖에 없습니다. 진짜 붕괴직전 막바지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셈입니다.

이미 많이 보도돼 알려진 대로 코레일은 드림허브가 현재의 사업 계획대로 추진할 경우 실패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사업성이 크게 악화됐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업을 현재 계획(서부이촌동과 철도정비창 통합개발)과 달리 사업성 높은 것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업기간이 최소 3~4년 늦춰질 수밖에 없는 요구입니다. 기존 출자사와 토지보상 지연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 등은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레일은 자본금을 현재 1조원에서 3조원으로 늘리자고 합니다. 역시 지금 상황에서 추가로 자본금을 더 내라고 하니 찬성하는 출자사가 많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로 레일과 다른 출자사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돼 온 겁니다.

2월 중순까지 CB발행 합의 못하면 디폴트 불가피

지난해 중순부터 코레일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적자가 불가피한 사업이라고 공공연히 강조하고 다닙니다. 그래야 원하는 방향대로 사업 계획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양가가 너무 높고 상업 시설 면적이 너무 커 실패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겁니다.

사실 이것도 일반적인 상식에서 많이 어긋나는 겁니다. 코레일은 용산국제업무지구를 개발하는 주체입니다. 누군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투자한다면 무엇을 보고 결정할까요? 당연히 국영기업이자 1대주주인 코레일일 겁니다.

그런데 그 코레일이 스스로 사업성이 없다고 하는 데 누가 투자 할까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 대해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코레일이 최근 들고 나온 자료가 20106월 출자사 중 한 곳인 삼성물산이 내놓은 보고서입니다.

삼성물산은 AMC의 주관사였던 시기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시장 침체로 46000억원 적자 사업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코레일 관계자는 최근 이 보고서를 근거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2010년 이미 민간인 삼성물산이 적자 사업이라는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그 당시보다 시장상황은 더 악화됐습니다.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걸 민간건설사도 모두 인정했는데 지금상황에서 흑자가 난다는 걸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드림허브의 다른 출자사들은 코레일의 이런 태도가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출자사들은 2010년 사업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한 민간 출자사는 지금 와서 이렇게 해명하더군요.

“당시 코레일과 서울시 등으로부터 뭔가를 받아내려면 사업시행자는 최대한 엄살을 부릴 필요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돈을 많이 번다고 해봐요. 얻어낼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서부이촌동 주민들이 보상비용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짠 게 당시의 사업 계획 전망이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밑지고 판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 아닌가요.

그런 엄살(?)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드림허브는 당시 토지주인 코레일로부터 토지대금일정 조정 및 토지이자 감면, 랜드마크빌딩 선매입등의 조치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덕에 16000억원 흑자가 날 수 있도록 최종 사업계획을 다시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안을 드림허브 이사회에서 코레일을 포함해 이사진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그 결과 2011년 하반기 사업 정상화 선언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코레일이 지금 와서 사업계획을 변경하기 전의 적자 예측치를 제시한 건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스스로 토지대금 납입 일정 변경 등을 통해 금융비용을 줄이는 등으로 사업 계획을 흑자구조로 바꿔 놓고 이제와서 과거 전망치로 사업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민간에서 좀 납득하기 어려울 겁니다.  

일단 사업 디폴트는 막아야

AMC가 분양가와 수익 예상치를 공개한 건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코레일에 구체적인 협상 대상 리스트까지 모두 공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업성이 있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코레일은 하지만 여전히 AMC가 제시한 내용을 잘 믿지 않는 모양입니다.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코레일 장진복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간 사업자가 우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본금 조달, 시설물 매입 등에 민간도 나서야 합니다. 그게 이행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절대 추가로 자금 집행을 하지 않을 겁니다. 코레일은 공기업입니다. 공적자금을 함부로 더 쓸 수 없습니다.

코레일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방향에 대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새 정부 차원에서 코레일의 방향을 정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붕괴 초읽기입니다. 일단 사업이 망하지는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이미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됐고, 2400여명의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으며, 국제 신인도 등과도 관련된 사업입니다.

지금이라도 코레일과 다른 드림허브 출자사간 합의점을 찾기를 바랍니다. 코레일은 사업성이 있다는 민간의 목소리를 좀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간은 코레일의 우려에 최대한 성의 있게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자기 이익만 찾는 모습을 보여선 안되겠습니다.

손 놓고 있는 서울시와 정부도 이젠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입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정부가 승인을 내준 사업입니다. 중재를 하든 강제를 하든 사업이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되겠습니다. 이젠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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