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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감정 노동 … ‘심 스틸러’로 불러다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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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류승룡은 자신의 눈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아지 눈 같은 선한 면이 있다고 했다. “‘7번방의 선물’의 이환경 감독이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촬영지까지 찾아와 캐스팅을 부탁한 것도 그 눈빛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배우 류승룡(43)은 이제 충무로의 대표 선수다. 그의 최근 행보는 종횡무진 달려나가는 롤러코스터 같다. 그릇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물처럼 맡은 역할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만주족 장군 쥬신타(‘최종병기 활’), 카사노바 성기(‘내 아내의 모든 것’), 킹 메이커 허균(‘광해, 왕이 된 남자’) 등등. 인물을 빚어내는 솜씨에 탄력이 붙었다.

 류씨는 이 세 작품으로 25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보증 수표로 떠올랐다. 그가 이번엔 여섯 살 지능을 가진 ‘딸 바보’ 아빠로 나온다. 23일 개봉하는 ‘7번방의 선물’(이환경 감독)에서다.

 ‘바보 아빠’ 용구(류승룡)는 자기보다 더 똑똑한 일곱 살 딸 예승(갈소원)과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다가, 억울한 사건에 휘말려 흉악범들이 모여있는 교도소 7번방에 수감된다.

할리우드 영화 ‘아이엠 샘’(2001)의 바보 아빠 샘(숀 펜)보다 더 순박한 캐릭터다.

 류씨는 시나리오와 캐릭터의 철저한 분석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본은 수험생 노트처럼 너덜너덜하고, 여백이 깨알 같은 메모로 가득하다.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부터의 버릇이다.

카사노바 연기를 위해 『유혹의 기술』 같은 심리학책을 정독했던 그는 이번에는 용구 같은 실제 인물을 수일간 관찰했다고 한다.

 “경기도 일산 빵공장에서 일하는, 7세 지능 수준의 29세 남성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영감을 얻었어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숫자를 반복해 말하고, 어순을 바꿔 말하는 습관이 있더군요. 그리고 항상 웃는 모습이 영화 속 용구와 똑같습니다.”

 그는 촬영장에서 안락한 배우용 의자가 아닌, 등받이도 없는 낚시의자에 쪼그려 앉았다고 했다. “초라한 용구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였죠. 촬영장에 매니저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주로 명품 조연을 뜻하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통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한 주연이다. 그래서일까. 자칭 ‘심(心) 스틸러’로 불리길 희망했다.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배우라는 의미다. “연기는 감정 노동이고, 배우는 감정 노동자입니다. 늘 다채로운 느낌을 연구하고, 감각을 키워야 하죠”라고 했다.

 캐릭터를 갖고 노는 것으로 유명한 그지만 이번 용구 역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26년 연기 경력에서 가장 힘든 역이었어요. 후시 녹음(촬영을 마친 뒤 편집영상을 보며 대사를 녹음하는 것)도 보통 하루면 되는데, 사흘이나 걸렸어요. 다시 용구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나름 무게 있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그가 이번에 ‘바보’ 캐릭터에 응한 까닭이 있을까. “연기 변신에 대한 강박이 아니라, 조폭·형사 역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강박이 컸다”고 했다.

 “인민군 장교(‘고지전’), 만주족 장군(‘최종병기 활’) 등 악역을 연기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지도록 연기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배역이 들어오더군요. 특히 카사노바 성기는 배우 류승룡의 숨겨진 ‘스펙’을 보여준, 터닝포인트였죠.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선 내 자신을 낮췄지만, ‘7번방의 선물’에서는 다시 내 존재감을 환기시키고 싶어요. ‘도대체 저 배우의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야’ 라는 말들을 할 겁니다.”

 그는 최근 촬영에 들어간 ‘명량-회오리바다’(김한민 감독)에서 이순신 장군(최민식)에 맞서는 일본 해적장수 역을 맡았다. “쥬신타와 비슷한 캐릭터여서 소속사는 반대했지만, 이순신 장군을 재조명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선택했습니다. 나중에 ‘류승룡 아니면 누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었겠어’라는 말을 들으면 대만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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