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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에코가 말하다, 음모론은 누가 만들어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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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프라하의 묘지 1·2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각 권 408·392쪽
각 권 1만3800원

대체로 진실과 사실은 같지 않다. 어쩌면 사실은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에 불과하다. 가려지고 흐려지고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다. 그리고 거짓은 이 지점에서 태어난다.

 거짓의 논리를 천착했던 움베르토 에코(80)가 신작 『프라하의 묘지』에서 제대로 칼을 빼들었다. 『푸코의 진자』 등 전작에서 다뤄왔던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과정을 뒤쫓는다. 유대인이 세계 지배를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근거 자료로 활용됐다. 하지만 1921년 런던타임스가 허위임을 밝혀낸 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해악을 끼친 허위 문서란 오명을 얻었다.

 세 명의 화자가 엇갈리게 전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팽팽한 밀고 당기기다. 문서 위조사와 정보원 등으로 활동하는 주인공 시모네 시모니니와 정체가 모호한 신부 달라 피콜라, 그리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사건을 취합해 정리해주는 화자는 핑퐁 게임을 하듯 치고 빠진다. 이들이 조금씩 흘리는 사건의 조각을 취합해 큰 그림을 그려가는 건 독자의 몫이다.

 퍼즐의 조각 맞추기는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거짓 문서(『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를 재구성하는 과정인 동시에 음모론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생생하게 전하는 다큐멘터리 같다.

 “어떤 음모를 폭로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면 독창적인 내용을 구매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구매자가 이미 알아낸 것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음모론의 보편적인 형식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말을 비롯, 주인공 시모니니의 말들은 가히 한마디 한마디가 음모론의 교과서로 읽힌다.

 음모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섬뜩한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공의 적이나 희생양을 찾는 기성체제다. 시모니니를 앞세운 희생양 찾기는 유대인을 겨냥한 거대 음모론으로 귀결되지만, 소설의 배경인 19세기가 아닌 오늘에도 또 다른 음모론이 양산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꾼으로서 에코의 치밀함이 드러나는 또 다른 부분은 독자를 숱하게 미궁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주인공 시모니니를 제외한 소설 속 등장인물과 이탈리아의 가리발디 천인의용대와 프랑스에서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 등이 역사에 실존했던 탓에 독자는 허구와 사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 속속 허방을 짚게 된다. 전방위적 인문학자의 면모를 보여주듯, 에코가 그려내는 19세기 유럽의 풍속과 그가 전하는 표절과 모방의 야사는 읽는 맛을 더해준다.

 에코는 최근 번역된 『가재걸음』(열린책들)에서 “사람들은 미스터리(그리고 음모)를 갈망하기에, 이를 제공하는 하나의 실마리만 있어도 그 이상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음모론이 뿌리내릴 여지를 우리가 제공한다는 말이다. 역자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시모네 시모니니는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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