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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홍종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
지금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있는「학윈정화」란 것은, 그 하나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학생헌장」을 내걸고 학생자신들이 깨끗하고 굳센 나라의 일꾼이 되기를 기약하고 올바른 학도의 길을 걸어나가자는 순박한 정열의 외침이고, 또 다른 하나가 국민학교, 중·고등학교의 교사들이 교육의 근본정신에 돌아가서 교사된 본분을 힘써 다하지 않아서 아니 되겠다는 양심의 호소인 것이다. 이야말로 나라의 앞날에 커다란 광명을 던져 주는 깨우침의 소리로서 이에 더 자랑스러움이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외침은 결국·나라의 교육정신을 전면적으로 쇄신하여 어린 학도들의 전도를 가장 억세게 바른길로 인도해 나가야 한다는데 있고 그 정신 즉 국가발전의 근본목적에 일치되는 것이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지금학도들과 교사들이 정치가나 행정당국 모든 사회지도층에 앞서서 학교마다 도시마다 이제 그 운동의 규모를 전국적으로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어린 학생들이나 교사들만의 외침으로써만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고 또 과외공부나 입학시험위주의 교육폐지나 교원의 대우개선, 또는 치맛바람이니 잡부금의 소탕 등등의 제도상, 관습상의 폐풍의 시정을 외치는 것만으로 그 성과를 기대키도 어려운 것이다.
문제는 오늘의 정치, 오늘의 정부가 이 어린 학생들과 박봉에 허덕이며 보잘것없는 대접을 받고있는 교사들의 가냘픈 듯 하면서도 전국적으로 우렁차게 들려오는 그 외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 문제인 측 바로 정신의 문제요, 그 정신인 즉 오늘의 부정·부패와 법과 질서의 문란을 어떻게 하면 끊고 찍고 우벼낼 것인지 그 용기와 경륜에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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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시민 5백 한 명이 심판하는 법정에서 사형의 판결을 받기 직전에 『내가 가사 여러 번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주장이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갈이 말했다.
『훌륭한 나의 친구들! 이 위대한 도시, 힘과 지혜의 도시 「아테네」의 시민들이여! 그대들은 돈과 명예와 지위를 쌓아 을리기에만 눈이 어둡고, 총명과 진실, 그리고 마음을 닦아나가야 할 것은 왜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있는가.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육체와 재물에만 정신이 팔릴 것이 아니고 마음을 닦고 정신을 가지고 샅 것을 나는 줄곧 누구에게나 권고해왔다. 먹은 돈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개인이고 나라이고 그 부강은 덕을 쌓아올리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이렇게 말한 것이 젊은 사람들을 부패케 했다면 나는 위험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내가 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이 될 것이다.…이제 나를 살리거나 죽이거나를 상관할 것 없이 나는 나 갈대로 내 길을 갈 것이다.…』
부패속에 부정과 거짓을, 일삼으며 물욕과 명망에 사로잡혀 사는 「아테네」의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는 덕을 길러 마음을 맑게 가지고 진실과 정의, 지혜와 용기로써 샅아 야 할 것을 말하는 「소크라테tm」가 밉고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따르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판결한 「아테네」는 그후 곧 망해버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영원한 스승으로서 그 교훈의 광채는 그의 죽음과 더불어 길이 빛나고 있다. 이것은 진실과 정의는 개인이나 국가의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요 무지와 거짓은 물거품 같이 허망한 것임을 증명해주는 산 역사인 것이다.

<3>
정신을 찾는 자는 동시에 생활의 실천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의 처참한 국난에 즈음하여 당시의 국민정신의 막중한 지주(지왕)가되셨던 한 분인 서산대사(서산대사)는 그의 선가구감 (선가귀감)에서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은혜를 들어 가르쳤다. 즉 첫째 부모의 은혜, 둘째 나라의 은혜, 셋째 스승의 은혜, 넷째 이웃(시주-시주)의 은혜가 그것이다.
은혜는 인간생활의 모든인연과 외분의 고귀한 표현인 것이다. 인간의 도리와 사회생활의 정리와 돈독의 원리가 이 네 가지 은혜가운데 전부 포함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어버이의 극진하신 사랑 속에 자라난 그 아들딸들은 마땅히 그 은혜를 깨달아 어버이 앞에 효성을 다하고 가정의 존엄을 위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나라에는 애국의 중점을, 스승에게는 사회생활의 걸음 거리로부터 지혜를 닦아준 정신의 은인으로 또 이웃은 영원한 협조와 단결의 벗으로 그 은혜는 모두가 고맙기 그지없는 것들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경박하고 부허한 세상은 어떠냐. 이제 우리는 이 땅의 청소년들이 바로 살고자 외치고 일어서는 정신을 북돋워주며 동시에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생활의 신조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뉘우치고 마음에 새겨 이네가지 은혜를 일상생활의 실천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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