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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넘어 오늘의 삶속으로

중앙일보

입력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달이 떠오르는 것에 맞추어 달집을 태울 때 볼 수 있었던 나삼득의 그 얼굴. 꽹과리 소리에 맞추어 덩실거리는 몸집을 따라 벙글거리던 그 복스럽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나삼득의 얼굴은 태어날 때부터 거지였던 것만 같았다. 천두만은, 고향 산천이 떠오르며 서러움이 복받쳐오르는 것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렸다."

내년 3월까지 3부작 전10권으로 완간될 예정인 『한강』은 6.25의 폐허, 문명의 쓰레기 통을 뒤지며 어떻게 '한강의 기적'으로도 불렸던 오늘의 경제 성장을 이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당.공화당.유신 독재에 맞서며 어떻게 민주 사회를 이뤄내려 했느냐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선인과 악인 등 무수한 인물들이 어떻게 어우러져 아등바등 끈질긴 삶과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가 하는 대하소설이다.

최근 출간된 1부 '격랑시대'3권은 잘못된 토지.농업 정책으로 고향에서의 삶의 뿌리를 뽑힌 채 대책 없이 서울로 올라오는 야간열차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와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움막치고 지게꾼.넝마주이로 살아가는 나삼득.천두만 등 민초들의 생활을 통해 50년대에서 60년대로, 농경 사회에서 도시빈민 사회로 넘어가는 시대의 풍속도를 밑그림으로 그린다.

그 위에 일류학교에 진학하려 상경한 유일민 형제의 청운의 꿈과 좌절을 축으로 수많은 군상들의 배반과 음모, 분단과 독재의 질곡 등의 인간과 사회의 거대한 드라마를 그려나간다. 시대의 풍속화나 벽화가 아니라 이 작품이 대하소설이 되는 것은 그 수많은 삶들이 서로 부닥치며 혹은 끌고 밀어주며 드라마틱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또 그시대를 살아낸 40대 이후 독자들은 작중의 어느 인물 하나는 꼭 자신의 그 때를 반추하고 있는 듯한 실제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조정래씨는 그의 기존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아리랑』에서와 같이 이 작품에서도 이야기를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 아니라 민초 한명 한명이 이끌게 한다.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는 사투리.욕.농담과 행태에서 민족적 해학성이 그대로 드러나며 서양 소설이 아닌 진정한 조선소설, 민족소설로 읽히게 만든다.

『한강』은 한겨레신문에 2년7개월 동안 연재되다 지난해 말 중단된 작품이다. 이후 기존의 연재분을 대폭 수정, 보완해가면서 80년 광주민주화운동까지 다루게 된다.

이 작품을 읽어본 문학평론가 권영민씨는 "조정래는 이제 『태백산맥』의 이념과 『아리랑』의 역사를 넘어서서 『한강』을 통해 민족적 현실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고 평했다.

민초, 우리들의 현실적 삶은 이념이나 역사 의식 보다 더 끈끈하고 속 깊다. 조씨도 "작가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를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코자 할 뿐이다"고 밝혔다.

이제 인간다운 삶을 위한 휴머니즘 문학, 더구나 혼신을 다해 인간사의 가닥가닥들을 흐트러짐 없이, 웅혼한 흐름의 감동으로 엮어내는 대하소설의 흐름이 끊길지도 모르는 우리 문학에 『한강』이 어떻게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한국문학의 금자탑을 쌓아올릴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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