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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벼락 출세한 아귀·참다랑어·바닷가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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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인류는 자연을 다 알고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전인미답의 세계가 버티고 있다. 과학 저술자 빌 브라이슨은 인간이 알고 있는 박테리아가 전체의 겨우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한 적도 있다. 바닷속도 그렇다. 연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깊은 궁리를 다 알 도리가 없다. 어쨌든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획으로 사라졌다던 청어가 왜 다시 나타났는지, 고등어는 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런 불가해한 궁리 속에서 인간의 기호도 바뀐다. 한 마리에 1억 원짜리 참다랑어가 팔리는 시대가 됐지만 일본에서 초밥이 시작된 에도시대에 참치초밥은 무사계급이 먹기엔 치욕적인 음식이었다. 당시 참다랑어는 비료로 쓰거나 하층민이 먹어 치우던 생선이었다. 특히 뱃살은 기피 부위였다고 한다. 특유의 기름기 냄새 때문이었다. 지금 도쿄 긴자(銀座)의 초밥집에서 참다랑어 뱃살이 한 점에 10만원 넘는 값에 팔리는 걸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예전 인천에서는 여름이면 부두 앞에 민어 파시가 열려 누구나 민어를 먹었다. 장사꾼이 지게에 얹어 판자촌에도 팔러 다녔다고 한다. 여름에 민어로 복(伏) 달임을 하면 주머니가 허룩해지는 요즘과는 달리 만만한 고기였던 셈이다.

 갈치도 그렇다. 갈치가 ‘금치’가 된 이 시절에 옛날 생각이 난다. 옛날엔 서울 변두리에서도 두툼한 갈치구이 먹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머니가 부엌에 부려놓은 거대한 갈치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 그런 갈치는 곧바로 강남 백화점에 직송하는 ‘귀물’이다. 굴비는 또 어땠는가. 어지간한 집엔 한 두름씩 부엌 살강에나 보리단지에 넣어두고 먹던 고기다. 두툼하고 묵직하며, 구우면 껍질이 바삭하게 일어나던 그 맛난 고기. 입맛 없는 여름에 찬물에 말아 한 점씩 올려 먹던 친근한 고기. 그렇게 만만하던 굴비가 이젠 제사가 아니어도 사람들의 절을 받는 시대가 됐으니.

 한강의 옛 어부들이 장어가 잡히면 재수 없다고 버린 적도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귀가 ‘물텀벙’으로 불리면서 추물과 일진 사나운 고기로 천대받던 시절은 그리 멀지도 않다. 요즘 말린 아귀를 쓰는 지역에서는 겨울에 제철 아귀를 잔뜩 갈무리해뒀다가 일 년 내내 쓴다. 아귀를 덕장에다 널어놓는데, 훔쳐가는 이들이 있을까 봐 야간 경비를 서야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떤 집은 아예 자기 소유의 건물 옥상에서 아귀를 말린다. 만만하던 아귀의 출세기다.

 서양에서도 귀천의 역전이 늘 있었다. 랍스터(Lobster)…. 그래 맞다. 미국 초기 개척시대에 그 비싼 바닷가재를 먹다 먹다 물린 하인들은 집단시위를 했다. “계속 랍스터를 주면 우리는 더 이상 일할 수 없다.” 그때 랍스터는 잡히면 밭의 비료로 쓰거나 떠돌이에게 내주는 음식이었다니, 참 이해가 안 되는 역사도 있는 것이다. 또 몇 십 년이 흘러 우리 바다에서 일어날 일들은 무얼까. 제철이면 나타나는 고마운 생선들, 지금이나마 실컷 먹어두자.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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