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텃밭 가꾸기, 독서 … 영적 리뉴얼 저절로 되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영성(靈性)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불안한 시대, 인간의 근본조건을 성찰하려는 움직임이다. 우리 시대 종교인을 만나는 ‘영성 2.0’ 시리즈를 시작한다. 종단·종파의 벽을 넘어, 세상의 변화와 함께 호흡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닦아온 이들이다.

대형교회 목사직을 벗어 던진 뒤 10년 전 영적 재충전 공간인 모새골을 시작한 임영수 목사. 임 목사는 “교회는 올바른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제시하면서도 그런 현실 너머 영원한 삶이 전개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어둠 너머 밝은 실내처럼 말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3일 오전 경기도 성남 을지대학교. 매주 일요일 이 학교의 도서관 지하 강당은 예배당으로 변한다. ‘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모새골’이라 이름 붙인 신앙 공동체의 식구 300여 명이 주일예배를 드린다.

 공동체의 본거지는 경기도 양평군 송학리 양자산 자락. 영락교회 담임을 지낸 임영수(72) 목사가 훌쩍 도심을 떠나 뜻 맞는 이들과 함께 2003년 초 시작한 신앙공동체다. 8000평 대지 위에 예배당·숙소 등 10여 동의 아담한 건물을 지어 놓고 기성 교회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을 받는다. 3∼4일씩 무료하게 뒹굴며 처음에는 자신과, 그 다음엔 절대자와 만나게 하는 영적 재충전의 공간이다.

 예배가 끝난 후 임 목사를 만났다. 10주년을 맞는 감회를 들었다. 그의 묵상집 『모새골 사계』(조이웍스)도 마침 나왔다.

 -감회가 남다르겠다.

 “2003년 1월 첫째 주 기도회로 시작했으니 딱 10년이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대나무로 치면 하나의 매듭, 나무로 치면 하나의 나이테를 더한 거다. 매듭 하나를 완성하면 그 다음 매듭을 준비하며 보냈다. 한국교회의 대안 같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책 쓰기로 치면 내 신앙의 본문 다음의 결론이다.”

 -대형교회 목사직을 그만뒀다.

 “구도자적인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걸 꾸리게 됐다. 하나님께 가는 길을 일상의 삶 속에서 구현하자는 취지다.”

 - 공동체 안에 마을도 있고, 교회도 있다.

 “상주 인원이 15명쯤 된다. 신선한 영성 체험을 위해 모새골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조리·청소 등 마을 관리를 맡는다. 요일 별로 자원 봉사하는 분들까지 치면 40명에 이른다. 이들을 생활공동체라 부른다. 대부분 모새골 교회 신자다. 처음에는 교회 건물 없이 예배공동체로 시작했다. 신자가 늘면서 이렇게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모새골 교회를 정식 발족했다.”

 -일반인이 들어가면 어떻게 지내게 되나.

 “묵상하고 독서하고 노동하는 게 전부다. 저녁에 상담을 받거나 내 설교를 듣는 일을 빼놓으면 뭘 하든 자유다.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 조용히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모양이다. 이제까지의 삶을 정리한다고 한다. 마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른 종교인도 들어올 수 있다. 모새골 일상 체험 프로그램, 3박4일 집중 영성 프로그램 두 가지가 있다. 식비와 숙박비는 내야 한다.”

경기도 양평군 송학리 양자산 자락에 있는 생활공동체 모새골 마을 전경. [사진 조이웍스]

 -이런 공간의 의미를 설명한다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정원이다. 하나님은 정원 책임자, 기독교인들은 정원사다. 정원사가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힘이 소진되고 회의에 빠질 때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럴 때 모새골에 들어와 영적 리뉴얼(Renewal·새로운 통합)을 하라는 거다. 모새골은 성경 시편에 나오는 ‘쉴 만한 물가’ ‘푸른 초장’이다.”

 -리뉴얼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하나.

 “다양하다. 6개월 시한부 생명을 선고 받은 암 환자가 2박3일 모새골을 다녀간 후 ‘의미 있게 남은 날들을 살다가 죽음을 맞겠다’고 생각이 바뀌어 2년을 사는 식이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던 사람이 수면제를 끊은 경우도 있다.”

 -신비주의에 빠지는 거 아닌가.

 “어떤 종교든 신비는 있게 마련이다. 신비 현상은 종교의 보이지 않는 뿌리 같은 거다. 그런 신비의 힘 없이 보기 좋은 열매의 삶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여러 가지가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일상에서의 탈출, 느리게 흐르는 시간, 깨끗한 자연, 영적인 마을 분위기…. 모새골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더 잘 단장돼 있다. 방문자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다. 침대나 의자 같은 가구 하나도 전문 디자이너에게 의뢰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주변과 조화되도록 만들었다. 마을에 첫 발을 내디디는 순간 안정된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이 많다.”

 -세습 논란 등 교회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런 모습 이면에 맑은 샘물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교회 전체가 깨끗해지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진화라고나 할까. 역사적으로 부패를 극복했던 예수의 영이 죽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것을 신앙 속에서 긍정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