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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식인 지도] 생명공학에 거는 브레이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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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의 질주에는 위험이 따른다.

인간의 장기를 배양하는 것쯤은 여반장(如反掌) 인 시대. 이런 급발전을 이끄는 관련 학자나 연구자들은 인간이 질병에서 해방될 날이 멀지 않았다며 장밋빛 청사진을 펼친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이를 인류의 재앙이라며 제동을 거는 사람도 만만찮다. 생명공학이 욱일승천할수록 오히려 이를 경계하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생명공학에 거는 브레이크'. 그게 요즘 우리 학계에서도 활발한 '생명윤리(bioethics) '에 관한 여러 담론이다.

지난달 말 원광대에서 열린 학국철학자 대회의 주제는 '생명공학 시대의 철학적 성찰'이었다. 철학자는 물론 과학.의학적 지식의 바탕 위에 오랫동안 이 문제를 천착한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 등이 참여했다.

결론은 생명공학 이면의 비인간화 위험성에 대한 경고로 모아졌다. 생명공학 만능주의 아래에서 윤리문제를 결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직은 원론적 수준의 해답이었다. 한국철학에서 그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생명윤리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관심은 1998년 '한국생명윤리학회'의 발족을 계기로 증폭됐다. 이 모임은 생명공학에 관심이 있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이듬해 '생명복제에 관한 서울선언'을 발표했다.

"생명공학 자체는 필요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살리는 방향에서 기술의 진보를 이룰 때 가치가 있다"는 게 이 선언문의 골자다. 여기에 드러났듯 생명윤리는 과학과 윤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상식론을 지향하는 가치다. 국제생명윤리학회(IBC) 나 유네스코의 입장도 이와 같다. 보다 구체적인 발언을 통해 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는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는 토머스 머리(54) 다.

그는 미국 헤이스팅스센터 소장이며 미국 대통령 직속의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기술 맹신론을 경계한다.

머리는 "유전정보가 특정 질병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인종이나 집단간 유전적 특성이 차별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역설한다. 물론 인간복제도 반대한다.

국내에서는 생명윤리의 법제화 움직임도 보인다. 각계 인사 20명으로 구성된 과학기술부 생명윤리위원회는 지난 5월 '생명윤리법'(시안) 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 국회 상정은 안된 상태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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