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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여 너의 이름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사랑이라는 달콤한 이름 밑에서 사람들은 사람들을 죽여가고 있다』라고 말한 어느 작가가 있었다. 『마음이 강한 자는 칼로 찌르고, 겁장이를 「키스」로 죽인다』는 것이다. 역설적 표현이지만, 사랑의 부조리한 일면을 예리하게 지적한 경구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랑의 풍속도 많이 변했다. 「코스모스」니, 달이니, 하늘이니 하는 간접화법으로 사랑을 고백하던 시절은 옛날 말. 요즈음은 솜털이 가시지 않은 소녀라고 서부극 식으로 사랑을 한다. 「템포」가 빨라졌다. 「안단테」에서 「알레그로」로 사랑의 「리듬」은 바뀌어 가고 있다.
속눈썹이 길다거나, 단발머리에서 푸성귀 냄새가 난다해서 옛날의 그 소녀로 알아서는 안 된다.
「바다제초스카」의 「소녀의 기도」를 연상하기보다는 숨막히는 「하드보일드」한 거친 그 「비틀즈」의 음악을 생각하는 편이 좋다.
이번에는 열아홉 살의 소녀가 강의실에서 사랑하던 교사를 과도로 자살했다. 그 이유를 묻기 전에 우선 끔찍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옛날 같으면 소녀의 실연극은 으례 남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거나 음독자살, 그리고 콧날이 시큰한 아름다운(?) 유서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제는 투우사적인 사랑, 칼로 찌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변절의 연인을 원망하던 가냘픈 소녀와 중인환경 속에서 과도를 번쩍이며 돌진하는 그 소녀상에는 얼마나 많은 거리가 있는가? 우연하고 특수하고 개인적인 돌발사로 보기보다는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드라이」해진 오늘의 「틴에이저」들의 애정풍속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청소년 선도의 달」인 모 양이다. 그러나 선도를 받아야 할 청소년은 많지만, 선도를 해줄 어른들이 없는 것이 슬프다.
순진하던 소녀를 짓밟은 것은, 그들의 꿈을 찢어놓은 것은 대체 누구인가? 어른들은 눈만 뜨면 횡령·횡포·불의·부정·사기·협잡을 일삼으면서, 그 틈에서 자라나는 청소년이 거칠어졌다고 한숨을 쉬는가? 『소녀여! 너의 이름은?』 소녀의 사랑마저도 거칠어지는 이 계절 속에서 한 번 더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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