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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지방 구도심 재개발도 서민 복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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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지난 11일 증시에선 산업 디자인 관련 주들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국보디자인이 장 초반 상한가를 쳤고, 누리플랜·시공테크 등도 5% 이상 급등했다. 정부가 구도심을 살리는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 10조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보도에 관련 주들이 들썩인 것이다. 하지만 몇 시간뿐이었다. “(기금 설치가) 결정된 바 없다”며 정부가 진화에 나서자 상승세가 확 꺾였다.

 기자가 이들 주가를 관심 있게 본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11월 지방 구도심의 실태를 3회에 걸쳐 기획시리즈로 보도할 때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접한 실태는 충격이었다. 부산시 동구 범일5동 매축지 마을은 6·25전쟁 때의 피란촌보다 나을 게 없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골목 사이로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집들이 이어졌다. 대구 서부시장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2층짜리 상가 벽면 곳곳에 금이 가 있고 대다수 점포는 셔터를 내렸다.

 구도심 노후화가 이처럼 심각한 것은 공동화 탓이다. 도시를 지탱하던 노동집약적 사업이 1990년대 이후 빠져나가고 지역 개발의 중점도 도시 외곽의 신도시로 옮겨 갔다. 구도심 공동화는 수도권과 부산·대구·인천 같은 대도시, 나주·밀양·청주·충주·동해 등 중소 도시를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이다.

 이런 구도심 노후화는 기존의 재개발·재건축 패러다임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면서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수익을 내는 재건축·재개발은 수도권에서조차 쉽지 않아졌다. 지방 구도심 재건을 위해서는 재정이 투입되는 관(官) 주도의 재개발이 불가피한 것이다.

 문제는 돈과 의지다. 특별법을 만들어야 할 국회는 대선에 신경 쓰느라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예산 당국은 막대한 재원 소요에 놀라 소극적이다. 하지만 구도심 재생은 국가 백년대계의 하나다. 건설업자나 땅 주인이 아니라 주민이 행복한 도심을 만드는 건 어떤 복지 공약에 밀리지 않는 서민 복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