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 정부가 직면하게 될 암울한 경제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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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새 정부 출범 준비가 한창이다. 그러나 다음 달 취임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마주하게 될 대한민국의 경제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올해 우리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2.8%로 낮췄다. 이는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성장률 전망치 3.0%보다도 0.2%포인트 낮은 것이다. 지난해 4분기까지 7분기 연속 0%대 성장에 그친 한국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올해도 계속될 것이란 예고다.

 저성장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미 경제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 취업자 수가 30만 명을 밑돌면서 고용 부진과 청년실업 대란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도 줄어 자칫하면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감돌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 아베 신정부의 무기한 양적완화(量的緩和) 정책으로 촉발된 원화가치의 상승(환율 하락)은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 부문의 경쟁력마저 급속히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다 늘어난 가계 빚과 주택가격의 하락은 가뜩이나 허약해진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상시적인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축복은커녕 온갖 경제적 악재를 짊어진 채 어렵사리 출발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작금의 저성장 기조가 단시일 내에 극복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로 야기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국내적으로도 고령화와 저출산이 초래한 구조적인 성장동력의 감퇴가 겹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저성장 기조를 단번에 역전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저성장은 오히려 박 당선인이 약속한 여러 공약과 새 정부가 구상하는 갖가지 야심 찬 정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성장 없이는 일자리가 늘어날 가망도 없고,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질 여지도 없다. 복지 수요는 생각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고, 재원(財源)을 마련할 세수(稅收) 기반은 좁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이다. 저성장이 당분간 불가피하다면 그런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세수 부족으로 복지 재원 마련이 어렵다면 솔직하게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미래의 성장동력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하고 눈앞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공감과 소통 능력이다.

 저성장이란 현실은 박근혜 정부가 피할 수 없는 조건이자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저성장이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숙명은 아니다. 한국 경제를 저성장의 질곡에서 끌어올리느냐 여부에 박근혜 정부의 성패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