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쟁 막는 과보호로는 중견기업 못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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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중시’ 방침을 밝힌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정부 주변에서 온갖 중소기업 지원책이 쏟아지고 있다. 박 당선인은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임하면서 당선 이후 중소기업중앙회를 가장 먼저 방문했고, 인수위원회는 당선인의 의중을 반영해 중소기업청이 부처 가운데 가장 먼저 업무보고를 하도록 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각종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의 가업 상속을 가로막았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포함한 획기적인 중기 지원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차제에 중소기업청을 장관급 독립위원회로 격상시켜 중소기업 지원업무를 활성화하자고 나선다. 가위 ‘중소기업 전성시대’가 된 듯한 모습이다.

 우리는 박근혜 당선인이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돌파구로 ‘중소기업 육성’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 같은 당선인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데도 십분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중소기업’이란 말만 붙이면 다 될 것 같은 중구난방식의 ‘중기 우대 정책’의 남발은 곤란하다. 먼저 어떤 중소기업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원칙과 방향을 잡고, 그에 필요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시급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일의 순서다. 무작정 중소기업이면 다 지원한다고 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영세 중소기업이나 경쟁력을 상실한 좀비 기업을 양산하고, 정작 미래의 성장주역으로 키워야 할 유망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는 소홀해질 우려가 크다.

 특히 무분별한 중기 우대 정책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려 하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을 증폭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즉 과도한 중기 지원의 확대가 오히려 중소기업이 정부 지원에 안주하려는 유인을 키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중기 지원책의 확대에 앞서 기존 중기 지원제도가 중소기업의 원활한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지부터 재검토하고 중기 지원체제를 전면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현재 중기 지원제도로 알려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는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중기 적합업종으로 성장한 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그 업종에서 철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판명 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동반성장이란 명목으로 재도입했다. 차제에 이 제도의 시행 중단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인수위원회가 중기 적합업종 지정제도를 법제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박 당선인의 의도를 심각하게 곡해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경쟁을 가로막고 성장을 저해하는 과도한 중소기업 보호정책은 중소기업을 키우는 지원책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영원히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으로 묶는 족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