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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우리 고객은 한인 동포 아닌 유학생"

미주중앙

입력

타인종, 특히 백인의 경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남 다르다. 특히 자국이 생산한 제품에 대한 충성도는 흑인, 히스패닉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시안 중에는 한국과 일본이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 애국심을 가장한 국수주의로, 한국은 진정한 애국심의 발로다. 특히 나라를 잃어봤고 전쟁을 겪었던 해외 한인동포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한국산 제품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최근 ‘연비 과장’과 ‘가격담합’을 지적하는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대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H사와 A사의 태도는 ‘100년 기업도 잘난 척 만하다간 망한다’는 비즈니스의 냉엄한 세계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했다. 자만심에 가득찼던 일본 기업들이 2류로 전락한 것처럼….

지난해 말 H사는 미 환경보존국(EPA)으로부터 연비 과장으로 소비자 보상 명령을 받았다. H사는 측정 방법의 작은 차이 때문이라며 주요 일간지에 사과·보상 광고를 냈다. 하지만 한인사회에는 이렇다 할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H사가 미국 사회를 대상으로 소비자들의 믿음에 상처를 줬다면 A항공사는 시카고 한인사회를 ‘가격담합’으로 무시했다.

공동행위라고 부르는 ‘가격담합’은 거래 조건, 거래 상대방, 판매 지역, 생산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독일어로 카르텔(Kartell)이라고 한다. 가격담합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이 소비자다. 경쟁사에 비해 더 싸다는 마케팅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그들은 한인 소비자로부터 선택의 권리를 빼앗아갔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 사업자는 대규모 사업자와 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똑같은 가격에 판매하라는 대기업의 횡포는 10달러 더 싼 가격에 대규모 사업자에게 손님은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소규모 사업자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소비자는 10달러에도 움직인다는 것이 소규모 업계의 하소연이다. 동종 업계 사업자들이 털어 놓은 전임자의 대형 사업자 밀어주기에 대한 불만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미국의 연방독점금지법으로는 1890년 제정된 셔먼 반트러스트법(Sherman Antitrust Act)이 해당된다. 지난해 초 삼성·LG전자가 일리노이 주로부터 가격담합 혐의로 제소를 당했다. 2006년에는 한국을 비롯해 독일, 일본 기업들이 가격담합으로 미 정부로부터 철퇴를 당했다. 앞서 2004년도에는 국적항공사가 가격담합으로 제소됐으며 결국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냈다. 통계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의 가격담합 단속에 한국기업들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문제의 광고가 나온 뒤 A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기자의 만나자는 말에 담당자는 이유를 물었다. 전문가로부터 문제의 광고에 대한 ‘담합성’ 문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라며 만남 요청을 회피했다. 다시 담당자에게 텍스트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해 11월 이야기다. 해를 넘겨 기다리고 있지만 담당자는 아예 묵묵부답이다.

기자는 지난 해 10월 시카고에 주재하는 한국 기관·지상사의 소통부재에 대해 언급했다. 이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다. 그 동안 이들에게 수 차례에 걸쳐 소통을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임시 소통만 됐다.

어쩌면 A항공사의 행동은 시카고 한인사회와 소통할 필요가 없다는 주재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잠재적 생각을 대변할 지도 모른다. A항공사의 전임자는 마케팅 대상은 유학생들이라며 한인사회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찔끔 기부하고 생색내고, 한 번 도와주면 여기저기 손 벌리는 단체들이 많다는 핑계를 내세워 아예 시카고 한인사회와는 담을 쌓고 있는 지상사와 주재원들이다. 하지만 청소와 세탁으로 20~30년을 일하며 시카고 한인사회를 일군 이민 1세들도 그들 못지 않은 경력을 갖고 있다. 영어 부족과 소수계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숨을 내놓고 비즈니스를 일으켜 세웠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2세들을 최고로 키웠다.

시카고를 비롯해 미주 한인사회가 한국 기업의 글로벌화에 초석이 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00만달러를 들여 현지사회에 광고를 내더라도 한인들이 이웃집 현지인에게 “MADE IN KOREA, NUMBER ONE”이라고 ‘콩글리시’로 말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소비자 카르텔이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소비자의 저항을 뜻한다. 미주 한인 사회가 소위 지상사가 주장하는 한인 동포가 아니라 현지 사회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입소문을 통해 불량품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경제팀장·mhli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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