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산의 생명 판화읽기] 가을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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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은행잎 잘생긴 놈들로 주워 왔습니다. 책상 머리에 두고 바라보니 제법 운치가 있더군요. 그 중 예쁘장한 놈으로 골라 보관하려고 책을 들추다 깜짝 놀랐습니다. 두텁고 장정이 튼튼한 책이 제격이겠다 싶어 고른 책엔, 빨간 단풍잎이 손바닥을 펼치고 반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가을 이후 책갈피 한구석에서 외롭게 지내다 자신의 계절을 다시 맞은 셈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책장 모서리에서 오랜 세월 견뎌낸 저 책을 일 년 내내 들추어보지도 않았던 게지요. 젊은 날 밑줄 치며 보던 저 책을 눈이 가는 데로 따라 읽으니 새록새록 지난날의 추억과 회한으로 가슴이 저며옵니다.

아!이 가을엔 지난 세월 생을 같이했던 그들을 다시 펼쳐도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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